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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드림]“봉사와 업무 병행, 딱 맞는 옷 찾았죠”

입력 | 2015-09-09 03:00:00

[내가 청년 리더]<11>세상을 바꾸는 ‘화살표 청년’ 이민호씨




폴리텍대를 졸업하고 중견기업 에스티팜에 입사한 화살표 청년 이민호 씨(오른쪽)가 4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산단로 공장에서 멘토 함은호 대리에게 일을 배우고 있다. 안산=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그는 ‘화살표 청년’이라고 불렸다. 지금은 누구나 당연히 생각하지만 과거 서울시내 버스정류장 노선도는 그야말로 ‘노선’만 알려줄 뿐 ‘운행 방향’을 알려주는 표시는 없었다. 서울 지리에 익숙하지 않아 운행 방향을 헛갈리는 시민들은 버스를 잘못 타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은 운행 방향을 친절히 알려주는 빨간색 화살표가 붙어 있다. 이 화살표를 처음 붙인 게 바로 화살표 청년, 이민호 씨(26)다. 화살표 청년 덕분에 서울 시민들은 버스를 좀 더 편하게 탈 수 있게 됐다.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지 헤매는 일도 줄었다.

2011년 8월부터 하루 15시간씩. 이 씨는 자전거를 타고 서울 시내를 누비며 정류장 3000곳 노선도에 화살표를 붙였다. 화살표 청년이 있다는 사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널리 알려지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표창장도 줬다. 작은 친절과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꾼 유명 인사가 된 이 씨는 2013년 2월 현대자동차 사회공헌팀 사원으로 당당히 입사했다. 화살표 청년의 시즌1은 이렇게 화려하게 대미를 장식했다.

이민호 씨가 버스정류장 노선도에 화살표를 붙이고 있는 모습. 이민호 씨 제공

○ 대기업 박차고 전문대로

“업무로 봉사를 하려니 이상하더라고요. 제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어요.”

화살표 청년의 시즌2는 사표를 내는 것부터 시작했다. 4개월 만에 당당히 사표를 내고 다시 청년으로 돌아갔다. 이 씨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기업에서는 모든 게 업무의 연장선이라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당당히 퇴사했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다시 직장을 구하거나 학교에 들어가야 했다. 화살표 청년을 기억해주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렇다고 화살표 봉사로 받은 표창장을 내세울 생각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실력만으로 일자리를 얻겠다고 다짐했다. 4년제 대학에 가보는 것도 잠시 생각해봤지만 역시나 맞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대학을 알아보던 이 씨는 한국폴리텍대 바이오배양공정과에 입학했다. 전기 기술자로 일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란 때문인지 전문 기능인이 되고 싶었다. 특히 그가 입학한 논산캠퍼스는 교육부가 지난해 발표한 취업률 순위에서 전국 전문대 가운데 1위(92.7%)를 기록할 정도로 ‘명문대’였다. 최신식 실험실을 갖춘 캠퍼스와 기숙사 생활도 매력적이었다.

이 씨는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겠다고 서약했는데 현재 한 백혈병 환자와 연결돼 기증을 준비하고 있다”며 “기증 서약을 하면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졌고, 그래서 폴리텍대에 입학했다. 향후 비전도 좋아 보였다”고 말했다.

○ 화살표 청년의 시즌3


폴리텍대 바이오캠퍼스는 특화된 일·학습 병행 과정을 운영하고 있었다. 재학생들이 자신의 전공과 연계된 산업현장에서 16주 이상 장기 실습을 한 뒤 해당 기업 직원으로 채용되는 프로그램이다. 이 과정에 선발된 이 씨는 원료의약품 회사인 ‘에스티팜’에서 현장 실습을 하고 당당히 채용됐다. 중견기업 사원으로 화살표 청년의 ‘시즌2’가 시작된 것이다.

이 씨는 현재 경기 안산 공장에서 생산제어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다. 숙식은 기숙사에서 해결하면서 매일 멘토의 지도를 받는다. 회사 관계자는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봉사 정신이 투철한 데다 실무 경험도 두루 갖춰 참 고마운 신입사원”이라고 말했다.

회사원이 됐지만 화살표 청년으로서 ‘시즌3’는 이제부터다.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또 작은 시도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 노인이 앉을 수 있는 버스 중앙차로 벤치, 노선 개선이나 교통 불편 신고를 위한 애플리케이션 등 생활 밀착형 아이디어들이 대부분이다. 이제는 버스정류장을 직접 다니면서 화살표를 붙일 수는 없지만, 많은 시민이 좀 더 편리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생각이다.

인터뷰가 끝난 뒤 다시 공장으로 들어가는 이 씨가 ‘파이팅’을 외치며 말했다.

“본인에게 맞는 옷이 가장 편안한 것 아닐까요? 높은 연봉을 받고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갔어도 즐겁지 않으니 힘들더라고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먼저 고민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래서 이 공장에 들어왔고요.”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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