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정부 예산안 386조 7000억] [나라 가계부 내가 챙긴다]5부<上>딜레마에 빠진 예산 편성
기획재정부는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내년까지 670여 개 재정 사업을 통폐합하는 등의 구조조정을 추진하지만 여전히 유사 중복 사업의 사각지대가 넓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재정 건전성만 악화되고 복지와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사상 처음으로 0%대 물가 반영
하지만 재정 사업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에서 세입 조정만으로 재정 건전성의 악화를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경직성 예산이 많은 복지, 국방 분야는 재정 팽창의 주범으로 꼽힌다. 당장 정부는 북한의 군사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내년도 전력 개선비를 크게 늘렸다. 최전방 비무장지대(DMZ) 전력 강화에 드는 예산은 올해(2조1361억 원)보다 40.6% 증액된 3조28억 원이다. 병사 봉급은 15%, 전방 근무 병사의 수당은 50% 인상된다.
문제는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중복되는 사업들이 제대로 조정되지 않은 채 예산이 증액되거나 매년 불용액이 발생하는데도 예산이 과다 편성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지역 거점 병원 공공성 강화 사업’과 ‘분만 취약지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지방 의료원과 적십자병원이 두 사업의 대상에 포함되다 보니 중복 지원을 받는 사례가 발생한다. 지난해에는 서귀포의료원이 두 사업에서 총 4억 원의 인건비를 중복으로 지원받았다가 국회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정부는 이 사업들에 올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각각 660억 원과 64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또 국회가 국방부의 ‘통신물자 획득 사업’에서 최근 2년간(2013∼2014년) 반복적으로 예산이 불용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기재부는 내년에도 올해(256억 원)와 비슷한 260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 유탄 맞은 R&D
복지와 국방 예산이 크게 늘자 정부는 다른 분야의 예산을 줄이는 것으로 대응했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평균 10.3%의 증가율을 보여 온 연구개발(R&D) 예산은 내년에 0.2% 증가에 그친다. 21개 R&D 사업을 대상으로 사업 기간 일몰제를 도입하고, 성과 미흡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과 유사 중복 사업 통폐합으로 25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절감했다. 방문규 기재부 2차관은 “그동안 R&D 지원이 연구를 위한 연구에 그치고 성장을 견인하는 것과 거리가 있었다”며 “거품을 제거하며 효율적으로 투자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중장기적 안목이 아쉬운 분야도 있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의 내년도 예산은 올해보다 3216억 원 줄었고 그중 2386억 원이 해외 자원 개발 분야다. 신현돈 인하대 교수(에너지자원공학과)는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은 국방처럼 정권의 부침과 상관없이 꾸준히 투자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쪽지 예산 난무 우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용 예산’이라 불리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정부는 SOC 예산을 오히려 올해보다 6.0% 줄였다. 올해 추가경정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SOC 예산이 반영된 데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보다는 투자의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정치권의 요구로 SOC 예산이 일부 증액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역구 예산을 따내기 위한 의원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그 어느 해보다 ‘쪽지 예산’이 난무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말을 무색하게 하는 예산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수차례 “농업을 미래융합 핵심 산업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농업·농촌 예산은 14조4862억 원에서 14조3219억 원으로 오히려 1643억 원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