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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본 ‘메칸더 브이’가 일본만화란 말에 눈물 펑펑”

입력 | 2015-09-09 03:00:00

신간 ‘코끼리뼈’ 낸 만화가 권혁주-꼬마비-윤필




“만화책 내는 건 자웅동체 단독 생산인데 셋이 모여 책을 내니 게으른 배우자랑 결혼해 애 낳는 기분이더라. 어휴.” “그래도 마흔이 코앞인 남자 셋이 일본 여행 함께 갈 정도로 친해진 건 인생 대사건이야.” 만화수다집 ‘코끼리뼈’를 낸 권혁주, 윤필, 꼬마비 씨(왼쪽부터). 꼬마비 작가는 얼굴 정면 촬영을 거절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 만화는 낙서와 두 지점에서 구별된다. 하나는 그림의 완성도, 다른 하나는 읽는 이의 마음을 붙드는 이야기다. 4일 출간된 ‘코끼리뼈’(애니북스·사진)는 30대 후반 세 만화가가 ‘이야기로서의 만화’에 대해 1년간 나눈 수다의 기록이다. 권혁주(37) 윤필(35) 꼬마비(본명·나이 비공개) 작가는 팟캐스트 프로그램을 50회 녹음하며 각자의 소싯적 굵직한 기억 조각을 소환했다. ‘날아라 호빵맨’ ‘우주소년 아톰’ ‘드래곤볼’ 이야기가 차례로 코끼리 뼈 화석을 더듬어 맞추듯 재조합됐다. “호빵맨은 왜 배고픈 사람에게 머리의 빵을 떼어 먹이는 영웅이 됐을까?” “아톰에게 에너지를 보급하던 동생 로봇 코발트는 훗날 어떻게 됐을까?” 수다 끝에는 한 명씩 돌아가며 짤막한 ‘오마주 만화’를 그려 실었다. 지난 주 마지막 팟캐스트 녹음 날 서울 금천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이들을 만났다. 》

―모두 비슷한 연배라 주제 정하기는 수월했겠다.

권혁주=동료들과 옛 만화를 추억한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만화가는 모두 스토리텔러다. 작품 속 이야기는 저마다의 경험에서 나온다. 작가들이 일상의 경험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방법에 대한 대화였다.

―취향이 다르니 수다 대상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을 텐데, 다툼은 없었나.

꼬마비=당연히 엇갈렸다. 권 작가는 나와 윤 작가가 열광한 엽기개그 만화 ‘이나중 탁구부’를 1권만 보다 역겨워 덮어버렸다. 그런 반응의 균열을 기대하고 지향했다. 누군가를 열광하게 하는 코드가 누군가에게는 책을 덮게 만드는 지점이 된다는 것. 어떤 대상을 좋아하는 사람이 엮어내는 상상과 싫어하는 사람의 반응이 섞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윤필=오히려 셋 다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의견이 강하게 충돌했다. ‘드래곤볼’ ‘H2’는 수다만 잔뜩 떨고 오마주 만화를 못 그렸다. 재조명하고 싶은 캐릭터나 에피소드가 서로 너무 달라 협의에 이를 수 없었다. 결과보다 대화 과정이 중요한 경험이 됐다.

꼬=동의 못 한다. 결과가 중요하지! 그래서 맡은 만화를 결국 마감 안 한 거잖나. 하하.

권=나도 마감을 못 한 듯 안 한 것 하나 있다. 하기 싫은 건 아무리 시켜도 끝내 안 하는 만화가들의 특징도 책에 반영된 듯하다.

‘코끼리뼈’ 중 꼬마비 작가가 그린 영화 ‘은교’의 오마주 만화. 애니북스 제공


―윤승운의 ‘맹꽁이 서당’ 외에는 일본 만화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인데….

꼬=어렸을 때 ‘메칸더 브이’가 일본 만화라는 사촌형 얘길 듣고 “아니야!” 하며 한참 엉엉 울었다. 우리 또래는 다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다. 아이러니다. 침투된 일본 문화 콘텐츠는 많았는데 철들기 전부터 반일 정서의 교육을 받았다. 가치 판단의 밸런스를 잡기 어려워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우리가 일부러 한국 만화 얘기를 더 많이 했다면 부자연스러웠을 거다.

권=1980, 90년대 해적판 ‘문방구 만화’에 대한 내용에 각별히 공을 들였다. 한글 대사가 박힌 그 만화가 당연히 모두 한국 만화인 줄 알고 봤다. 한참 뒤 아톰이 일본 로봇이라는 얘길 듣고 얼마나 충격받았는지…. 홀랑 속은 기분이었다.

윤=한국 만화 잡지는 연재 중단이 잦았다. 그러다 보니 장면 이미지 흔적은 강렬하게 남아 있지만 이야기 기억은 풍성하지 않다. 마무리가 없었으니까.

꼬=윤승운 선생님은 어렸을 때 만화가를 꿈꾸게 해준 분이다. 완벽하게 똑같이 그리고 싶어서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캐릭터 표정과 눈과 입꼬리 움직임을 확인했다. 추천사 써주시면서 ‘이거 내가 전에 그린 건가’ 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기뻤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