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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십니까]“빵보다 책으로 빈곤 퇴치… 저개발국에 ‘교육 씨앗’ 뿌려요”

입력 | 2015-09-09 03:00:00

외교관서 교육전도사로 나선 민동석 유네스코 한국 사무총장




민동석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이 서울 중구 명동길 유네스코회관에서 6·25전쟁 이후 유네스코 지원으로 발간된 초등학교 교과서를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어휴, 말도 마세요. 아마 제가 지구상에서 악성 댓글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일걸요.”

민동석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63·전 외교부 차관)은 최근 기자와 만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던 대규모 촛불시위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농업 협상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의 한국 측 수석대표를 지냈다.

그는 광우병 파동 당시 온갖 저주와 협박을 받았다. 대규모 시위를 보면서 이 나라가 (분열로) 무너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어마어마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7년이 지난 지금 그는 광우병 파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광우병 파동은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과 반미, 이념적 대립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해 표출된 문제라고 봐요. 지금 미국산 쇠고기가 상당량 수입되는데, 당시 미국산 쇠고기에 독극물이 든 것처럼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외무고시 13회 출신으로 직업 외교관이었다. 2006년 한미 FTA 협상단이 꾸려지자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으로 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처음에는 “왜 나인가”란 생각이 앞섰다고 했다. 협상이 끝나면 대표가 옷을 벗는 게 관례였기 때문이었다.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에 대해 협상 대표가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실제 그 또한 농식품부 통상정책관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는 협상 대표가 희생양이 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광우병 파동을 왜곡 보도한 MBC ‘PD수첩’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벌여 승소하기도 했다. 민 사무총장은 “외롭고 힘든 싸움이었지만 오해를 바로잡아서 공직자로서 소신을 지킬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외교부 차관을 끝으로 공직 생활을 마감하고,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을 맡았다. 외교관으로는 처음이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전 세계 199개의 유네스코 국가위원회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민 사무총장은 취임 후 조직의 역할을 다지는 데에 주력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지난해로 60주년을 맞이했는데, 그는 향후 100년을 내다보고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기도 했다.

가장 방점을 둔 부분은 저개발국에 대한 교육 사업이다. 그의 ‘외교무대’도 아프리카와 중남미, 동남아시아 등 오지로 달라졌다. 40시간의 비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현지에 글자를 가르치고 직업교육을 하는 학습센터를 짓는 게 주 사업이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있던 한국은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교과서를 발간할 수 있었죠. 1950, 60년대 초등학생들은 이 교과서로 공부했고, 이런 교육의 힘이 대한민국 성장의 토대가 됐죠.”

한국은 유네스코의 지원금으로 초등학교 교과서를 매년 3000만 권씩 찍었다. 1950, 60년대 학생들은 이 교과서로 공부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자신이 공부했던 초등학교 자연 교과서를 감사의 표시로 2012년 유네스코 본부에 기증하기도 했다.

“빵보다는 책입니다. 최근 40년간 아프리카에 국제개발원조로 투입된 자금이 1조7500억 달러(약 2100조 원)나 됩니다. 문제는 아프리카가 여전히 빈곤하다는 거죠. 교육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해요.”

그는 ‘제2의 반기문 발굴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바로 ‘유네스코 키즈 프로그램’으로 2003년부터 매년 전국 초등학교에서 학생을 추천받아 글로벌 리더가 되는 교육을 한다. 100명 선발에 2500여 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다. 교육을 받은 학생 중 25명을 다시 선발해 유네스코·경제협력개발기구(OECD)·유럽연합(EU) 본부 등에 직접 가서 국제기구를 체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매년 하다 보면 언젠가 이 아이들 중에서 제2, 제3의 반기문 사무총장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미와 아시아 등지의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세계문화유산 등록의 노하우도 함께 전수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이 받은 걸 국제사회에 돌려줘야 할 때입니다. 저개발국에 희망의 씨앗을 뿌려야죠. 저의 30년 외교관 경험이 작으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심정으로 일에 매진할 겁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