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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의 시장과 자유]박 대통령과 MB의 ‘경제 공조’

입력 | 2015-09-09 03:00:00


권순활 논설위원

5년 반 전인 2010년 3월 일본 출장길에 현지 경제인들을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이명박 대통령(MB)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였다. 이지마 히데타네 한일경제협회장은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추상적 비전만 있고 성장전략과 정책이 부족한 반면 이 대통령은 실질적 성과를 거뒀다”고 부러워했다. 임기 말 독도 방문과 일왕(日王) 관련 발언으로 기류가 바뀔 때까지 MB는 일본에서 벤치마킹할 외국 지도자로 꼽혔다.

금융위기 극복의 기억

2008년 9월 본격화한 미국발(發) 경제위기는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1929년의 세계 대공황과 유사하다”고 할 만큼 세계적 비상사태였다. 그러나 마이너스 7%대까지 예상했던 2009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0.7% 성장했고 이듬해인 2010년에는 6.5%로 치솟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내내 세계 평균을 밑돌던 성장률은 2년 연속 세계 평균을 웃돌았고 주요 경제국 중에서는 상위권이었다. 2010년 11월 한국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글로벌 경제 질서와 국가 위상이 급변한 금융위기에서 한국이 ‘승자의 그룹’에 편입됐음을 지구촌에 각인시켰다.

MB도 임기 후반 경제민주화 바람에 휘둘리면서 성장 동력을 추락시킨 과오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금융위기 극복 때 보인 추진력과 경제외교 역량은 역사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만약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전 의원이 당선된 뒤 경제위기가 닥쳤다면 그 충격파는 훨씬 컸을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정부가 한국 사회의 암적 존재인 반(反)대한민국 세력의 준동에 일정 부분 제동을 건 공로는 인정한다. 박 대통령의 사심 없는 애국심과 정치인으로서의 청렴함도 상당한 덕목이다. 그러나 경제 쪽으로 눈을 돌리면 성장 투자 수출 소비 등 거의 모든 항목에서 합격점을 주긴 어렵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현재의 정부 경제팀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한 윤증현 경제팀보다 역량과 성과가 떨어진다.

성장 엔진은 가라앉는데 글로벌 경제 흐름은 갈수록 심상찮다. 양대 경제 대국인 미국의 금리 인상 임박설과 중국의 실물·금융 동반 후퇴로 국내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7년 전 금융위기 때는 대선과 총선 직후여서 그나마 ‘정치 변수’의 악영향이 미약했지만 내년과 2017년은 총선과 대선의 해다. 가뜩이나 체력이 약해진 우리 경제에 본격적인 해외발 충격이 닥치면 2008년 위기 때보다 심각하고 기나긴 고통의 터널로 들어갈 수 있다.

한때 정치적 라이벌이던 MB에 대한 박 대통령의 거부감이 깊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제 임기 절반을 넘긴 만큼 해묵은 감정은 푸는 게 어떨까. 박 대통령과 MB를 당선시킨 국민은 대부분 겹치고 이들 대다수는 특정인에 대한 맹목적 지지자라기보다는 좌파 정권의 위선과 무능에 신물을 느낀 사람들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현직 대통령의 ‘차가운 관계’는 정치적으로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묵은 감정 풀고 만나라

나는 박 대통령이 가능하면 빠른 시일 안에 MB를 만나 경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MB가 대통령으로서 경험한 무형의 자산을 흡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같은 MB 정부 인재들의 지혜도 국정운영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현직 대통령의 ‘경제 공조’는 국가를 위해서도, 박 대통령 본인을 위해서도 추진해 볼 만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