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홍천으로 귀농귀촌한 이들이 유기농업기능사 자격 과정을 배우고 있다. 박인호 씨 제공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자격증 시험을 보기는 참 오랜만이었다. 1989년 입사해 2010년 가을 퇴사할 때까지 운전면허 외에는 ‘붙기 위해’ 시험을 치른 적이 없다. 직장 시절 바쁜 업무와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자기계발을 위한 주경야독의 추억도 간직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2010년 가을 가족 모두가 강원 홍천으로 이주한 이후 필자는 직접 친환경 농사를 지으면서 한편으로는 다시 머리띠를 졸라맸다. 온전한 ‘자연인’이자 ‘농부’가 되고자 결행한 인생 2막의 길, 그 미지의 길은 좁고 길고 구불구불했으며 심지어 어두웠다. 그 길을 밝혀줄 빛이 필요했고 그게 공부였다.
되돌아보면, 이 과정을 함께 한 만학도들은 대부분 40∼60대 귀농·귀촌인이었다. 이들은 필자와 마찬가지로 농사와 전원생활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밝혀줄 빛에 대한 갈망, 갈급함이 있었다. 한 60대 귀농인은 이에 대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배우고 익히니 그만큼 전진할 수 있었고 또한 계속 걸어가고자 하는 용기도 얻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늦깎이 배움의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올 들어서는 메르스와 극심한 가뭄이 향학열에 불타는 농부학생들의 발목을 잡았다. 한 여성 귀농인은 “가뭄 때문에 밤늦게까지 강에서 물을 길어와 작물에 뿌려 주고는 책상에 앉아 졸음과 싸워가며 공부했다”며, “그나마 엉덩이를 붙이고 공부할 시간조차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농촌으로 들어온 40∼60대 귀농·귀촌인들의 주경야독 열기는 이처럼 뜨겁다. 전원생활을 준비 중인 도시민들의 사전 귀농·귀촌 교육보다 되레 더욱 진지하고 심지어 처절(?)하기까지 하다.
이들은 배운 것을 바로 농사와 전원생활에 적용한다. 역으로 현장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이론과 실습 공부를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든다. 더 나아가 부가가치가 높은 농작물 재배와 농업·농촌의 6차 산업화(1차 생산, 2차 가공, 3차 서비스 융·복합), 마을과 지역 상생사업에 있어서도 주도적인 일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새로 발을 내디딘 농촌에서 주경야독하는 이들은 넘치는 열정과 에너지로 미답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사실 상당수는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큰 문제가 없다. 그래도 이들은 도전한다. 새로운 인생 2막의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때론 무모해 보이기조차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해 보겠다”며 의욕을 불태운다. 그리고 이미 일부에선 그 성과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농촌으로 들어와 한 걸음 한 걸음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고령화·공동화로 위기에 처한 농업·농촌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될 것이라고 필자는 굳게 믿는다.
귀농·귀촌한 40∼60세대가 부르는 만학의 노래는 결코 세련된 선율이 아니다. 새로운 인생 2막의 목표를 이루고자 토해내는 거친 숨소리요, 도시를 내려놓고 시골에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안간힘이다. 고되지만 행복한 전원생활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흘리는 굵은 땀방울이 땅에 떨어져 내는 소리 없는 울림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보다 많은 예비 귀농·귀촌인과 초보 귀농·귀촌인들이 이 아름다운 만학의 합창에 동참해볼 것을 감히 권한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