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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환수의 스포츠 뒤집기]스포츠와 이데올로기

입력 | 2015-09-09 03:00:00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스포츠에도 이데올로기가 있다. 골프는 시장경제를 신봉한다. 인기가 곧 돈이다. 남자와 여자는 상금이 다르다. 미국은 남자가 약 3배(총상금)에서 5배(우승상금) 많다. 남자 상금은 상위권 편차가 심하다. 1타 차이로 타이거 우즈와 보통 선수가 구별된다. 우즈는 전성기에 상금 1000만 달러 안팎과 스폰서 수입을 보태 매년 1억 달러(약 1200억 원)를 벌었다. 요즘도 5000만 달러는 거뜬하다. 우리나라는 반대다. 여자 대회 수가 2배 이상 많다. 상금 규모도 약간 크다.

그렇다면 만 50세 이상의 남자 시니어와 박인비가 뛰는 여자 투어의 상금은 어느 쪽이 많을까. 뜻밖에도 미국은 거의 비슷하다. 여전히 300야드를 쳐내는 노장들의 인기가 만만찮다. 우리나라는 당연히 여자 상금이 남자 시니어보다 5배 이상 많다. 그런데 시니어와 2부 투어의 남녀 상금을 비교하면 사정이 다르다. 우리도 미국처럼 남자가 상금이 많다.

골프의 반대편에 테니스가 있다. 테니스는 남녀 상금이 같다. 남녀평등이란 이념적 가치가 시장경제를 물리친 경우다. 메이저 대회에서 여자는 3세트 경기를 하는 반면 남자는 5세트로 승부를 가린다. 체력 소모가 훨씬 심하다. 노동생산성으로 보면 남자가 역차별을 받는 셈이다. 톱 랭커 저격수로 이름 꽤나 날린 프랑스의 질 시몽은 2년 전 프랑스오픈에서 이런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혼쭐이 난 적이 있다.

골프와 테니스가 서로 다른 길을 걸은 것은 미국과 유럽 스포츠의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있다. 골프는 영국에서 시작됐지만 미국에서 꽃을 피웠다. 민간 주도로 스포츠가 성장한 미국은 생존 전략으로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를 따랐다. 반면 클럽이나 지역사회가 기반이거나 국가 주도로 스포츠가 발전한 유럽은 가치를 지킬 여유가 있었다.

그렇다고 미국 스포츠가 양적인 성장만 강조한 것은 아니다. 20세기 중반에 흑인의 진입장벽을 허무는 데는 미국이 앞장섰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상당한 위험 부담을 안고 흑인에게 문호 개방을 한 결과 미국의 스포츠 산업은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현재 흑인들이 맹활약하는 야구 농구 미식축구가 골프나 아이스하키보다 인기가 높다.

미국 스포츠에는 자본주의 속의 사회주의가 눈에 띄기도 한다. 미국프로미식축구(NFL)는 각종 마케팅을 리그 사무국에서 하고 수익을 공평하게 분배한다. 입장수입은 홈과 방문팀이 나눠 갖는다. 구단의 연봉 총액도 별 차이가 안 난다. 전력 평준화가 되니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다.

이와 함께 미국은 주요 리그가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제)과 사치세(연봉 총액이 기준을 넘어가면 내는 벌금) 등의 규제로 시장을 통제한다. 우리나라도 농구와 배구에 샐러리캡이 있다. 한때 야구는 세계에 유례가 드문 연봉인상 상한제와 종신고용제가 있었다.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스포츠. 요모조모 뒤집어보면 세상이 보이기도 한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