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일 경제부 기자
시계를 1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지난해 9월 2015년도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되자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 여당이 경로당 지원 예산 603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며 ‘불효막심 정권’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경로당 예산이 정부안에 반영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야당이 정치 공세를 펼친다”고 반박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정치권은 언제 싸움을 벌였냐는 듯 일사천리로 경로당 예산을 증액 처리했다. 이후 여야는 “우리 당의 노력 덕분에 경로당 예산을 반영할 수 있었다”며 치적 홍보에 여념이 없었다.
‘경로당 예산을 뺀 채 정부 예산안 국회 제출→여야의 정치 공방→국회 심의 과정에서 증액→여야 치적 홍보’ 등으로 이어지는 레퍼토리는 최근 10년간 돌림노래처럼 반복되고 있다. 여야 정치권, 정부 누구 하나 이런 비효율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지자체가 중앙정부로부터 받은 교부세를 갖고 경로당 지원 예산을 편성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는 지자체 재정이 가뜩이나 열악하다 보니 교부세로 경로당 지원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여야는 2008년부터 매년 반복적으로 국회에서 관련 예산을 증액하고 있다.
어차피 국고로 경로당을 지원할 거라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여야가 법을 개정해 경로당에 대한 지원 업무를 국가사무로 지정하면 된다. 그러면 국회의 정치 공방과 꼼수 증액은 사라지고 처음부터 기재부가 관련 예산을 검토해 예산안에 반영할 것이다.
하지만 여야 모두 이런 해결책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은 ‘내가 노력해서 경로당 지원 예산을 살려냈다’고 홍보하길 원한다”고 했다. 정치인들이 지역사회에 생색내기 하는 데 경로당 예산만큼 효과적인 게 없는데 굳이 정부가 일을 처리하도록 제도를 바꾸겠냐는 얘기였다.
정치인들이 노년층의 표심을 의식해 ‘쇼잉(showing)’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서로 ‘너는 불효자고 나만 효자’라는 식의 낯 뜨거운 공방은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그런 게 바로 정치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