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을 등진 오색 케이블카… 끝청에서의 전망 시원찮아 썰렁한 오색, 마을회관만 들썩… ‘정문헌 의원님’ 감사 잔치 오색 출발이라는 전제 버려야, 국민 위한 케이블카 가능
송평인 논설위원
대청에서 오색으로 내려왔다. 여름 성수기가 지난 오색은 썰렁했다. 저녁식사 시간 무렵인데도 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호텔의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유독 한 곳 오색2리 마을회관만 들썩들썩했다. 안을 들여다보니 ‘정문헌 의원님, 고맙습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붙어 있고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지역 유지들이 탄 듯한 외제차가 오가고 취기가 오른 사람들이 서성거렸다. ‘정문헌 의원님’이 케이블카 유치에 힘을 써 사시사철 오색에 사람들이 몰려오게 해준 것을 감사하는 자리였다.
아주 오래전 고즈넉했던 약수터 마을 오색이 기억난다. 그곳에 언제부터인가 약수터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호텔이 들어서고 온천이 들어서고 식당이 들어섰다. 성수기만 지나면 썰렁해지는 오색은 무모한 과잉 투자의 결과다. 잘못된 투자를 잘못된 민원으로 만회하려 한 것이 케이블카다. 이 민원을 해결하는 데 지난 대선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노무현-김정일 비밀대화록을 공개해 현 정권 창출에 기여한 정 의원이 지역구 의원으로서 큰 역할을 했나 보다.
그러나 설악산은 건장한 남성도 오르기 힘든 험한 산이다. 난 산행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근육이 풀리지 않아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의 대중화’를 위해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산행이 쉽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설악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면 케이블카를 놓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다만 놓으려면 제대로 된 곳에 놓아야 한다.
우리가 보통 설악이라고 부르는 곳은 끝청에서 대청을 바라봤을 때 서북능선의 왼쪽을 말한다. 그쪽으로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이 있고 더 멀리 울산바위가 있다. 울산바위가 설악이란 성의 바다 쪽 외곽이라면 서북능선은 내륙 쪽 외곽이다. 케이블카는 이 성벽을 등지고 서서 반대쪽을 바라본다. 한마디로 엉뚱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오색이 속한 양양군도 끝청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대청봉을, 그 다음에는 관모능선을 원했으나 국립공원위원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 양양군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쪽이든 출발지는 똑같이 오색이다. 오색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이 전제 자체가 틀려먹었다. 설악산은 국민의 공원인 국립공원인데도 오색 케이블카는 애초 국민을 위한 케이블카가 아니라 양양군을 위한 케이블카로 계획됐다. 오색 케이블카 논의 자체가 “속초시가 권금성 케이블카로 큰 이익을 누리고 있으니 양양군에도 하나 허가해 달라”는 요구에서 출발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오색 케이블카는 이해관계의 타협이지 관광 개발과 환경 보전이라는 상반된 가치의 타협이 아니다. 환경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설악산의 진면목을 보게 해주는 명품 케이블카를 놓아 보겠다는 야심 찬 기획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국립공원위원회는 설악의 내부로 밀고 들어오려는 케이블카를 어떻게든 외곽에 묶어 놓는 데 성공했으니 한숨 돌린 것이고, 오색 주민으로서는 그래도 설악의 가장자리에 간신히 케이블카를 놓을 수 있게 됐으니 다행인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