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가계부 내가 챙긴다]5부<中>현장 목소리 빠진 예산편성
그런데 아시아문화전당이 있는 광주 동구 지역은 국토교통부도 도시재생사업지역으로 선정해 지난해부터 2017년까지 총 100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비슷한 지역에 2개 부처가 예산을 중복 투입함에 따라 넉넉하지 않은 나랏돈이 비효율적으로 집행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국토부 관계자는 “아시아문화전당이 워낙 대규모여서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도시재생사업 지역을 선정할 당시부터 문체부 사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2016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현장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거나 사업 타당성을 정밀하게 검증하지 못한 채 개별 예산을 줄이거나 늘렸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현장과 소통이 부족한 가운데 당초 정한 시나리오에 따라 예산 총액을 조정하는 데만 주력했다는 것이다.
9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을 때 정부는 대학 실험실습실 환경을 안전하게 개조하는 데 1606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내년 예산안에는 이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그 대신 ‘실험실 기자재 확충사업’이라는 성격이 다른 사업에서 안전환경 조성사업비를 떼어 쓰도록 했다. 기자재 확충사업 예산은 250억 원 규모여서 전국 대학의 안전도를 높이기에 부족하다는 현장의 지적이 많았다. 정부 당국자는 “지난해에 비해 안전 관련 이슈가 많이 수그러든 점을 감안했다”고 말했다.
내년 에너지 관련 예산은 올해보다 2355억 원 줄어든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해외자원개발 사업이 대폭 감소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업 구조조정에 앞서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특성을 면밀히 검토해 장기 전망을 하거나 적정 삭감 규모를 검증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산업부는 ‘앓던 이’ 같았던 해외자원개발 사업 관련 예산안을 대폭 삭감해 기재부에 냈다. 그러자 기재부는 ‘해외자원개발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냐’는 비판이 일 것을 우려해 산업부 안보다 삭감 폭을 다소 줄였다.
언론진흥기금은 정부가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을 전망하는 바람에 정보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사업 등을 하기 어렵게 됐다. 문체부는 언론기금이 신규 사업을 하려면 내년에 올해보다 50억 원가량 많은 28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기재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내년 예산을 올해와 같은 232억 원으로 정했다. 그뿐만 아니라 기금 여유자금이 고갈되는 상황에서 국고출연 계획도 보류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년에 국고 출연 여부, 언론기금을 법정 기부금 단체로 지정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겠다”고 해명했다.
○ 2시간 기다려 10분 면담하는 ‘요식 소통’
기재부 예산실이 있는 정부세종청사 4동 3층은 예산 심의기간 중 다른 부처 예산담당자나 기금 관계자 등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보통 1, 2시간씩 기다려 기재부 관계자를 겨우 만나지만 사업과 관련한 설명을 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 내외로 짧았다.
예산 편성 과정에서 ‘불통’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시간이 촉박해 심도 있는 분석이 힘든 구조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재부가 애초부터 짜둔 시나리오에 개별 사업을 끼워 맞추는 식으로 예산안을 편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기재부는 올 3월 중기 재정운영계획에 따라 부처별로 내년 사업에 드는 재정총액을 2차례에 걸쳐 심의해 지출한도를 정했다. 이어 4월에 지출한도를 다소 늘린 정부안을 만든 뒤 국회 심의 과정에서 1조 원 안팎의 예산안이 증감될 것으로 보고 국회 통과 시 예상되는 최종 예산안까지 작성했다.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연말 국회에서 증액될 규모까지 염두에 두고 감액될 여지가 상대적으로 높은 사업을 끼워 넣었다는 지적도 많다.
재정 전문가들은 기재부가 예산 총액만 정해두고 개별 사업은 부처가 자체적으
로 정하도록 하는 예산편성 방식의 취지가 왜곡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재부의 독단을 방지하기 위해 이런 방식을 도입했지만 이 방식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면서 “국회 예산정책처 등이 이런 예산편성 체계가 잘 돌아가는지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홍수용 legman@donga.com·김철중 / 이세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