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 이식 수술 전인 2013년 이동형 산소호흡장치와 함께 신지숙 씨가 외출하는 모습. 신지숙 씨 제공
“우아, 엄마가 아빠가 됐어요.”
네 살 난 딸 정아가 콧줄을 뺀 나를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만 바로 까르르 웃었다. 정아에게 엄마는 콧줄이 있는 사람, 아빠는 콧줄이 없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정아는 콧줄을 달지 않은 엄마를 본 적이 없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누군가의 소중한 폐를 이식받아 오롯이 내 몸으로 숨쉴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일이 있기 전 나는 씩씩하고 건강했다. 남편과 함께 줄넘기와 달리기를 했는데, 솔직히 내가 더 잘했다.
습기가 부족하면 눈이 건조했던 나는 가습기를 자주 틀었다. “인체에 안전한 성분이라 아이한테도 쓸 수 있다”는 바로 그 가습기 살균제를 처음 본 것은 2009년 9월. 이후로 가습기를 틀 때마다 청소를 겸하여서 수시로 살균제를 함께 사용했다. 이 사소한 선택이 나와 우리 가족을 이렇게 큰 고통으로 밀어 넣으리라고 그때 어찌 알 수 있었을까.
○ 기침과 구토, 숨 차는 증상…임신 때문이라 믿어
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신지숙 씨는 딸 우정아 양이 엄마와 손잡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을 들어 보이며 활짝 웃었다. 신 씨는 “이제 매일 어린이집으로 가는 노란 버스까지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가겠다”고 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폐가 딱딱하게 굳는 폐 섬유화가 상당히 진행됐습니다. 매우 심각합니다. 치료를 받아야 하니 내일 당장 아이를 낳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옮겨간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의 설명을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아이를 낳으라고? 예정일이 한 달이나 남았는데.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하지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상황은 긴박했다. 다음 날 바로 제왕절개로 정아를 낳았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출산 뒤 쭉 중환자실에 살았다. 아이에게 젖을 못 물려 젖몸살까지 찾아왔다.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된 나는 그저 소용돌이에 빠진 것만 같았다. 얼마 후인 6월 9일 나는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겨졌다.
솔직히 당시엔 내가 왜 아픈지도 몰랐다. 그냥 폐질환이 생겼다고만 생각했다. 서울아산병원으로 가는 구급차 안에서 ‘아, 요즘 뉴스에 나오는 가습기 살균제 폐 손상 피해자가 바로 나였구나’라고 어렴풋이 깨달았다.
○ 콧줄과 함께한 4년여…안아주는 딸 덕에 버텨
그래서일까. 상태가 좋아졌다.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옮겼고 얼마 되지 않아 퇴원했다. 물론 산소호흡기도 함께였다. 코에 긴 줄을 달았다. 한순간도 이 장치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태어난 지 100여 일 만에 정아를 만났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봤던 내 딸. 처음엔 너무나도 작은 생명체가 꼬물꼬물 움직이는 게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내 안에 품고 말랑말랑한 감촉을 느꼈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뻐서 그랬던 것인데 쌕쌕거리는 나를 보더니 가족은 내 걱정을 하며 아이를 ‘뺏어가’ 버렸다. 그 마음은 알지만, 야속함이 밀려왔다.
집에서도 정아를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 남편 역시 출근을 해야 했다. 그래서 주중엔 아이가 아주버니 댁에 가 있었다가 주말에만 우리 집으로 왔다. 정아한테도, 아주버니 내외께도 미안했다. 아이가 돌이 됐을 때 정아를 직접 키우겠다고 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장애인 대상 도우미를 신청하면 된다”며 걱정하는 가족을 설득했다. 무엇보다 태어난 뒤 1년 동안 옆에 제대로 있어주지 못했던 정아와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아기곰. 아빠곰은 뚱뚱해, 엄마곰은 날씬해, 아기곰은 너무 귀여워. 으쓱으쓱 잘한다.”
모든 엄마들이 수백 번을 불렀을 ‘곰 세 마리’ 노래. 나는 ‘곰 세 마리가’까지만 불러도 숨이 찼다. 한참 쉬다가 ‘한집에 있어’를 불렀고, 또 한참 쉬다가 ‘아빠곰, 엄마곰, 아기곰’을 불러야 했다. 하지만 정아는 노래가 쭉 이어지지 않자 뽀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균등하게 한 소절씩 노래를 불러 녹음했고, 그렇게 완성된 노래를 정아에게 들려줬다. 처음엔 관심을 갖더니 금세 또 뽀로통해졌다. 아이는 내가 옆에서 직접 불러주길 바랐던 것이다.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처음엔 한 소절만 불러도 숨이 찼지만, 다음엔 두 소절까지 부를 수 있었다. 그렇게 며칠간 연습했더니 노래 한 곡을 쉬지 않고 부를 수 있게 됐다. 물론 숨이 차 헉헉거렸지만. 정아는 이런 내 노래에도 즐거워했다.
아마 이때였던 거 같다. ‘폐 이식 수술을 받고 싶다. 그래서 정아 옆에서 많은 것을 해줄 수 있는 건강한 엄마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긴 것이.
하지만 호흡 곤란은 수시로 찾아왔다. 1년에 3, 4개월은 병원 신세를 졌다. 그래도 정아를 돌볼 때면 힘이 생겼다. 그럼에도 늘 미안했다. 함께 놀이터에서 놀아주지도 못했고 세 끼 모두 만들어 먹이지도 못했다. 툭하면 우는 나약한 엄마를, 정아는 늘 꼬옥 안아줬다.
그렇게 4년이 흘렀고 몸은 갈수록 약해졌다. 2014년 6월부터는 폐 기능이 더욱 악화돼 밤에 잘 때 마스크 형태의 가정용 인공호흡기를 착용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정부가 그해 4월부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게 치료비를 지원해 주기로 했다는 걸 알게 됐다. 절망과 희망이 교차했다.
○ 아파도 행복…딸과 함께 슈퍼에 가고 싶어
8월 3일 호흡 곤란이 계속돼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다. 여느 때처럼 치료를 받은 후 퇴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 저녁 갑작스럽게 폐 기증자가 나타났고 그 다음 날 폐 이식 수술을 받았다. 성공적으로 잘 끝났다고 했다. 놀랍도록 빠르게 진행됐다.
요즘은 아파도 기쁘다. 주치의로 나를 계속 돌봐준 서울아산병원 홍상범 교수(호흡기내과)와 폐 이식 수술을 해준 김동관 교수(흉부외과)에게 감사했다. 나한테 폐를 주고 세상을 떠난 그 누군가도 정말 고마웠다. 나도 장기기증을 할 수 있을 만큼 빨리 건강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행운아다. 많은 사람의 도움과 사랑으로 고통을 잘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나 같은 피해자가 다신 나타나선 안 된다.
제일 먼저 정아 손을 잡고 슈퍼에 가고 싶다. 아이가 사달라고 하는 물건을 여느 엄마처럼 실랑이를 하다가 사주고 싶다. 가족과 소풍도 가고 싶다. 아, 아직 내 몸 상태가 가을 소풍은 어려우려나. 그럼 또 어떤가. 건강해진 후 내년 봄에 소풍을 가면 되지. 행복하다. 그런데 왜 또 눈물이 날까.
※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가습기 살균제(세정제)로 인해 폐 손상 증후군(기도 손상, 호흡 곤란 및 기침, 급속한 폐손상(섬유화) 등의 증상)을 일으켜 영·유아와 아동, 임신부, 노인 등이 사망한 사건으로 2011년 4월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총 221명. 이 중 92명이 사망했다. 피해자는 정부 조사 등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입은 가능성이 높다고 판정된 사람들이다. 2014년 4월부터 환경부에서 의료비를 100% 지원받고 있다. 올해 5월 12일 문을 연 서울아산병원 환경보건센터가 이들의 건강 모니터링과 정신 상담 및 치료를 하고 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