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
지난해 8월경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군 보위사령부를 내세워 김원홍의 아들인 김철을 외화 횡령과 경제질서 혼란 주도 혐의로 내사했다는 정보가 흘러나올 때 드디어 올 것이 오는가 싶었다.
그런데 김원홍은 지금까지도 건재하다. 그가 김정은의 신임을 얻는 데 대단한 노하우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원홍은 과거 숙청에 이용된 뒤 ‘토사구팽’ 당한 수많은 선배들을 지켜본 사람이다. 김정일 시대에 토사구팽 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사회안전부 정치국장이었던 채문덕이다. 1990년대 후반 김정일은 채문덕을 시켜 ‘심화조’ 사건이라는 것을 조작해 수많은 고위 간부들을 제거했다. 서관희 노동당 농업비서가 간첩 누명을 쓰고 평양시민들 앞에서 공개 총살됐고, 문성술 중앙당 본부당 책임비서와 서윤석 평남도당 책임비서는 가혹한 고문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거나 정신병자가 됐다. 이때 수많은 고위 간부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2만5000여 명이 숙청된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일은 대량 아사로 흉흉해진 민심을 딴 곳으로 돌리고 김일성 시대의 노간부도 제거하는 일석이조의 결과를 얻었다.
당시 채문덕은 매일 숙청 명단을 들고 가 김정일의 비준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나친 처형으로 민심이 들끓자 김정일은 채문덕을 ‘공명심과 야망으로 사실을 날조하고 혁명동지들을 억울하게 죽게 한 극악한 살인마’로 낙인찍고 2000년 7월 그를 심복 15명과 함께 공개 총살했다. 채문덕의 일가는 멸족됐고 그의 지휘를 받던 안전원 4000여 명이 군복을 벗고 숙청됐다.
이런 사례를 무수히 목격했던 김원홍이 토사구팽이란 단어를 매 순간 떠올리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터. 하지만 김정은이 변심하면 제 아무리 김원홍이라도 방법이 없다. 살기 위해선 자신이 왜 필요한지 김정은에게 부단히 주입시키는 길밖에 없다.
이런 김원홍에게 걸려든 대표적 표적이 ‘미녀 응원단’이었다고 한다. 북한은 지난해 7월 인천 아시아경기에 미녀 응원단을 보내겠다고 했다가 8월에 파견 불가를 통보했다. 북한은 “남측이 응원단 규모와 공화국기 크기, 체류 비용 등을 거론하며 시비를 걸기 때문에 응원단을 보낼 수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 때문에 남쪽에선 정부가 속이 좁았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보위부장인 김원홍이 과거 응원단 선발 때부터 전해져 온 이런 관행을 몰랐을 리는 없다. 하지만 공교롭게 지난해 여름 김정은이 김원홍을 찾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더구나 장성택 측근 숙청이 반년 넘게 이어지면서 보위부에서도 장성택과 가까웠던 주요 간부들이 하나둘 사라지게 되니 김원홍도 불안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응원단 비리를 자기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카드로 써먹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김원홍의 보고를 받은 김정은은 즉각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2005년 인천에 응원단으로 왔던 이설주에게 진짜 그런 일들이 있었는지 물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약 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김정은은 김원홍에게 전화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랄발광들 하는군. 역시 믿을 건 보위부밖에 없습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