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구두당/구병모 지음/292쪽·1만2000원·창비
‘빨간구두당’은 잘 알려진 안데르센 동화와 그림 형제 민담 등을 변주한 작품 모음이어서 얼핏 청소년 독자를 떠올리게 되지만, 실은 성인물에 가깝다. 어둡고 비극적인 이야기에 사회 비판 의식을 담았다. 때마침 최근 오늘의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돼 주목받는 작가의 작품집이다.
표제작 ‘빨간구두당’은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를 모티프로 쓰였다. 원작은 빨간 구두를 얻어 신은 소녀가 구두를 벗지 못하고 계속 춤을 추다 발목을 자른 뒤에야 구두로부터 벗어난다는 내용이다. 작가는 여기에 흑과 백, 회색만 있는 도시라는 설정을 세운다. 빨간 구두를 신고 춤을 추는 소녀가 이 도시에 나타나자 일부 사람의 눈에 ‘빨강’이라는, 지금껏 보지 못한 색깔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에서 그 소녀를 화형한 뒤에도 잘린 발목에 신긴 빨간 구두가 남아 돌아다니고, 빨간색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 구두를 쫓아다니면서 자신들을 ‘빨간구두당’이라고 부른다. 허영에 대한 징벌이라는 종교적 도덕성이 강조된 안데르센의 원작과 달리, 구 씨의 ‘빨간구두당’에는 획일적인 사회에서 다르게 보는 사람들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대한 반추가 담겨 있다.
그림 형제의 ‘개구리 왕자’를 비튼 ‘개구리 왕자 또는 맹목의 하인리히’, 러시아 민담 ‘커다란 순무’를 변주한 ‘커다란 순무’ 등 8편의 이야기가 실렸다. 고전 동화를 뒤집는 이야기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주변부의 삶의 상처라는 주제의식을 놓지 않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