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노동개혁 잠정 합의]합의 한계와 향후 과제 ‘기준 명확히’ ‘충분한 협의’ 등 문구에 구체성 없어 논쟁 소지
노사정(勞使政) 4자 대표가 노동시장 개혁안에 극적으로 합의했지만, 노동시장 개혁은 이제 시작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의결 절차가 남아 있는 데다가 잠정 합의문을 둘러싼 노사정 간 동상이몽(同床異夢)이 벌써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14일 중앙집행위원회(중집)를 열어 잠정 합의문(조정문안)의 수용 여부를 결정한다. 중집은 한국노총의 산업별, 지역별 대표가 모두 참석하는 최종 의사결정기구다. 노동조합 특성상 한국노총도 의사결정을 할 때는 중집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김동만 위원장이 노사정 합의문에 사인을 하려면, 중집에서 권한을 위임받거나 의결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잠정 합의문이 중집에서 통과되지 않을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금속노련 등 강경파들이 일반해고, 취업규칙 변경 등을 아예 빼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8일 노사정 협상 복귀 여부를 결정하려던 중집 역시 강경파들이 회의장을 원천봉쇄하면서 무산됐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합의는 한국 경제의 제2의 도약을 이끄는 역사적 합의”라면서 “한국노총 조합원들도 그 뜻을 존중해 의결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의 의결이 불발될 경우 정부는 노동개혁 5대 법안 개정을 독자 추진할 예정이다.
특히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고,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는 문구를 둘러싼 논쟁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방적’, ‘충분한’이란 개념이 수치로 계량할 수 없는 추상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향후 논의 과정에서 정부가 노동계와 ‘충분한 협의’를 했다고 주장하면서 시행하려고 하면, 노동계는 ‘충분한 협의’가 안 됐다고 반대하는 양상이 반복될 수 있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법제화를 하기로 한 일반해고도 다시 쟁점이 될 수 있다. 노동계는 특별법 마련 등을 통해 해고 요건을 엄격히 하자는 입장이고, 경영계는 근로기준법 23조를 개정해 해고를 쉽게 하자는 입장이라 법제화 작업도 간단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치기로 한 비정규직 고용 기간 연장(2년→4년)과 파견 업종 확대 역시 또 다른 불씨다. 두 사안 모두 법 개정을 해야 하는 것이어서 노사정이 결론을 내리지 못할 경우 정부 의도대로 국회에서 통과되기도 어렵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