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황무지 개간으로 시작… 제주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
《 ‘생각하는 정원’은 제주 제주시 한경면 녹차분재로에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협재 해변으로부터 제법 들어와 있고 다양한 식생으로 우거진 산림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중산간이다. 이곳의 성범영 원장(76)은 말했다. “바다의 짠 기운이 올라오면 안 되죠.” 그는 소금기를 막는 대신 흙을 포기했다. 온통 자갈밭이라 대대로 농사도 짓지 않고 버려뒀던 땅에 나무를 심고 돌담을 쌓은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번창하던 와이셔츠 사업을 접고 제주로 내려와 1968년부터 3만6000m²의 황무지를 아내와 한 뼘 한 뼘 개간해 지금의 정원을 일궜다. 스스로를 ‘농부’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정원은 대형 화훼 기업농 규모다. 이 정원에는 외국인, 특히 중국의 방문객이 많다. 1995년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 1998년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부주석이 찾아온 것이 계기가 돼 지금까지 중국 정관계 고위직 6만 명이 다녀갔다. 연간 40만 명의 관람객 중 30%가 중국인이다. 또 중국 인민교육출판사는 이달부터 중국 9학년(한국 중학교 3학년) ‘역사와 사회’ 교과서에서 그를 한국 정신문화의 상징인물로 소개하고 있다. ‘성범영이 황무지를 개간해 나무를 심은 분투는 한국인의 진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2000여 점의 분재와 1만여 그루의 나무, 돌담과 연못이 어우러진 ‘생각하는 정원’에서 올해 5월 그를 만났다. 그는 자신이 이룬 성과에 자부심이 대단했고, 중국인들의 칭찬에 고무돼 있었다. 이달 초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후 그를 또다시 인터뷰했다. 》
제주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이 그의 정원에 있는 주목 앞에 서서 활짝 웃고 있다. 주목은 죽은 부분을 그대로 지니고 살아갈 만큼 생명력이 강한 나무이다. 성 원장은 “주목의 속성은 더디지만 꾸준히 크는 우정을 닮았다”고 말했다. 제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김선미 기자
―박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섰습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을 “이해한다”고 했습니다만….
“미국에서 ‘이해한다’는 말을 하는 것도 이해됩니다. 저는 근간에 중국인들의 달라진 생각을 확실히 느껴요.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강한 개혁 드라이브 이후 한동안 뜸하던 중국 고위직들이 다시 우리 정원을 찾아오고 있는데, 얘기를 나눠 보면 우리 한국 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울었어요. 이럴수록 우리는 말 하나하나도 조심해야죠.”
―한미, 한중 관계를 나무에 빗댈 수 있을까요.
“가난해서 고등학교를 중퇴했던 농부에게 어려운 질문이네요. 이렇게 말해보겠습니다. 먼저 심은 나무(미국)도 변함없이 아끼고, 바로 옆 이웃나무(중국)도 사랑해야 한다고. 나무를 키울 때 가장 큰 적은 성급함입니다. 나무는 정성으로 다듬으면 아름답게 됩니다.”
“2005년 방문했습니다. 당시 저장(浙江) 성 서기였던 시 주석이 서울에서 박근혜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을 만났던 때입니다. 그때 박 대통령이 시 주석을 융숭하게 대접하면서 두 분이 라오펑요(老朋友·오래된 친구)가 됐죠. 그게 중국 국민들의 생각에 굉장한 영향을 줘요. 중국에 박 대통령 팬이 많습니다.”
―이번 박 대통령 방중에 실질적 소득이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니죠. 중국에서는 세 번 만나고 나서야 친구가 됩니다. 이번에 튼튼한 교량이 만들어졌어요. 앞으로 중국이 음으로 양으로 많이 도울 겁니다. 친구 맺는 것과 나무 가꾸기가 닮았어요. 햇빛과 바람을 쏘이고 물을 주고…. 친구 맺기 어렵지만 한 번 맺으면 좀체 배신을 안 하는 게 중국인이거든요.”
나는 그가 중국, 중국인에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성범영 원장은 이번 학기부터 중국 인민교육출판사의 중국 9학년(한국 중학교 3학년) ‘역사와 사회’ 교과서에 한국 정신문화의 상징인물로 소개됐다. 생각하는 정원 제공
분재 원조인 中, 예전엔 선입견 가져
―어떻게 중국과 인연이 시작된 겁니까.
“1995년 10월 판징이(范敬宜·1931∼2010) 당시 중국 런민(人民)일보 편집국장이 동아일보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가 우리 정원을 방문했습니다. 그분은 청나라 후기에 나온 ‘병매관기(病梅館記)’라는 책을 보고 분재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갖고 있던 중, 우리 정원을 방문해 생각을 바꿨답니다. 병매관기는 황제의 폭정과 획일적인 과거제도를 병든 분재에 빗대 비판한 내용이랍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장쩌민 주석이 방문했습니다. 원래 30분 머물 예정이었는데 정원에 써 있는 나무 관련 글을 읽고 제게 질문을 하다 보니 1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이후 장관 등 중국의 귀빈들이 많이 찾아오고, 저를 중국으로 초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장 전 주석이 어떻게 이 정원을 알고 왔을까요.
“저도 영문을 몰랐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베이징에 갔는데, 판 국장이 제게 ‘중국에 오면 연락하세요’라고 말했던 게 생각났어요. 사람들은 ‘그분은 장관급이라 바빠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죠. 그런데 판 국장은 저를 반갑게 맞으며 누런 봉투를 내줬습니다. 열어보니 판 국장의 ‘신(新)병매관기’란 글이 게재된 런민일보였어요. 우리 정원을 다녀간 한 달 후에 쓴 글이더라고요. 분재가 나무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더 잘 자라게 하는 예술인 걸 알았다고, 한국의 생각하는 정원이 ‘황무지에서 땀으로 일궈낸 의미 깊은 곳’이더라고 쓰여 있었어요.”
―결국 분재는 중국에서 명예 회복을 했나요.
“맞습니다. 그가 ‘신병매관기’를 쓴 날이 중국에서 죽었던 분재가 다시 살아난 날이에요. 세계 분재 강국은 일본입니다. ‘국풍(國風)’이라는 분재 전시를 해마다 열어 귀중한 것은 문화재청에 등록시킵니다. 일본의 분재는 문화와 산업 차원으로 발전해 외화를 벌고 있죠. 분재는 1300여 년 전 중국에서 시작돼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말이에요.”
―판 전 국장을 그때 한 번 만난 건가요.
“아니죠. 그 후 꾸준하게 연락하고, 수시로 중국에도 갔습니다. 그럴 때면 그분이 그림을 그려 숙소로 가져다주기도 했어요. 그는 5년 전 돌아가셨지만 전 이제 그분 아드님인 판쉰(范迅) 중국 광업대 부총장(60)과 교류하고 있습니다.”
그와 얘기하다 보니 디자이너 고(故)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이 떠올랐다. 서울 명동에서 의상실을 시작했던 앙드레 김은 주한 외교사절들을 극진히 대접해 한국 민간외교의 선봉에 섰었다. 성 원장도 제주에 가기 전 서울 명동에서 와이셔츠 사업을 하면서 외교관들을 단골로 뒀다. 취향과 치수를 기록한 고객 카드를 만들고, 성심껏 손님을 대했다고 한다.
장쩌민-후진타오 방문땐 분재 선물
그의 이런 자세가 오늘의 ‘생각하는 정원’을 있게 한 건 아닐까. 성 원장은 “정원 조경에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여러 생각을 하며 오랫동안 정원을 만들었고, 방문객들도 찬찬히 글을 읽고 생각을 하며 관람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생각하는 정원은 영혼의 정원, 철학자의 정원 등 7개의 정원으로 이뤄져 있다. 육송과 해송을 비롯한 여러 소나무들이 있다. 그중 정문 옆 소나무는 1998년 후진타오 전 주석이 방문하기 나흘 전 성 원장이 당시 150년 된 것을 경북에서 옮겨와 기념식수한 것이다. 그동안 중국 고위직들이 선물한 글과 그림도 정원 곳곳에 많이 걸려 있다.
―중국 인사들이 선물을 많이 했네요.
“장쩌민 전 주석은 글씨가 쓰인 접시, 후진타오 전 주석은 만리장성 그림에 금(金)을 입힌 액자를 제게 선물해 줬습니다. 중국 인사들로부터 받은 선물이 6000점쯤 되는데 이 중 1000점이 글과 그림입니다.”
―원장님도 많이 선물했겠군요.
“우리 정원을 소개한 책을 중국어판으로 내서 선물했고요. 장쩌민, 후진타오 두 분이 방문했을 때는 분재를 선물했습니다.”
―일종의 ‘선물 외교’ 같습니다.
“박 대통령이 중국 철학자 펑유란(馮友蘭)의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하자 2013년 그의 외손녀가 박 대통령에게 펑유란의 서예 족자를 드렸습니다. 또 지난해 시진핑 주석이 박 대통령에게 삼국지 인물인 조자룡 그림 족자를 선물할 때 박 대통령은 바둑알을 선물했죠. 시 주석이 바둑기사 이창호 9단의 팬이어서 그랬겠지만, 저로서는 그 선물에 실망했습니다. 한국의 유명 예술가들에게 작품 제작을 부탁해 대통령은 물론 각국 정상에게 선물하면 좋겠어요. 그 예술가도 함께 유명해질 거 아닙니까.”
―올해 10월 말∼11월 초 서울에서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립니다.
“우리 정원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한국의 자랑으로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국격이 달라질 텐데요.”(웃음)
성 원장은 “나를 인정해주는 중국에 애정을 느끼고 교류에 최선을 다하게 됐다. ‘감동이 있는 한국 관광’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국내 정관계 인사들이 이 정원에 더 큰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서운해했다.
제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