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기자
2011년 홍준표 대표 체제를 5개월 만에 무너뜨린 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해킹’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 홍 대표가 임명한 최구식 홍보기획본부장의 비서가 연루되면서 유탄을 맞았다. 사실 홍 대표가 처음 홍보기획본부장직을 제안한 건 김정훈 의원이었다. 당시 당직을 맡으면 이듬해 총선 공천에 유리하기에 김 의원도 마다하지 않았다.
○ 총선 공천 놓고 불거진 세력 대결
공천권은 홍 대표에게서 박 비대위원장에게 넘어갔다. 공천 작업이 한창이던 2012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은 한 당직자를 은밀히 안가로 불렀다. 이 대통령은 4명의 공천 가능성을 물었다고 한다. 이재오 정몽준 홍준표 김무성이 그들이다. 그만큼 친박(친박근혜)계의 공천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렇게 박 대통령이 직접 배지를 달아준 이들이 3년여 만에 ‘안면 몰수’했다(박 대통령은 그렇게 믿고 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2012년 9월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다. 당시 동행한 한 의원은 박 후보에게 “유승민 의원이 박 후보를 많이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박 후보의 반응은 싸늘했다. “누가요?” 그게 전부였다. 이쯤 되면 알아들어야 할 의원들이 유 의원을 원내대표로 만든 것이다.
‘유승민의 날갯짓’은 ‘승부사 박근혜’를 깨웠다. 국회법 개정안 파문은 유 전 원내대표의 퇴진을 넘어 ‘대구-경북(TK) 물갈이’로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3년 만에 다시 서문시장을 찾은 박 대통령은 대구 지역 의원들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내려 내년 총선 쓰나미를 예고했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의 옹졸함을 비판한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레임덕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박 대통령의 결기 앞에 이런 비판이 힘을 얻을 리 없다. 내년 총선에서 가장 절박한 이는 박 대통령이다. 집권 하반기 안정적 국정 운영과 퇴임 이후 박 대통령의 정치적 활로가 20대 총선 결과에 달렸다. 친박계가 당내 캐스팅보트를 쥐려면 20명은 돼야 한다. 자신의 안방인 TK(27석)가 ‘물갈이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의 ‘치킨게임’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박 대통령이 치킨게임에 얼마나 강한지는 북한의 지뢰 도발 사건에서 입증됐다. 그렇다고 김 대표가 물러설 처지도 아니다. 그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참여경선제)에 ‘정치 생명’을 걸었다. 친박계는 자신만만하다. 한마디로 “‘오픈’인지, ‘육픈’인지 우린 모르겠고!”다. 김 대표가 박 대통령과의 정면대결을 피할 거란 얘기다. 친박계는 앞으로 김 대표에게 ‘총선 승리와 일부 공천권 양보 중 택일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김 대표는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70%가 넘는다”며 여론에 기대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 ‘어셈블리’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여론은 변심 직전의 애인 같다.” 결국 김 대표의 최대 무기는 부산-울산-경남(PK) 세력을 등에 업고 TK와의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결기다. 만약 TK와 PK가 갈라선다면 1990년 3당 합당 이후 25년 만에 정치 대변혁이 일어나는 셈이다. 결별 수순을 걷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친노(친노무현) 대 비노(비노무현) 갈등과 맞물려 정치 지형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
○ 여야 할것없이 시한폭탄 안고 있어
인간은 음식 없이 40일, 물 없이 3일을 살 수 있지만 의미 없이 35초를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35초마다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인간 본성 탓에 상상의 나래를 편 것인지, 아니면 정치권에 쓰나미가 몰려올지는 조만간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연말쯤 개각과 청와대 인적개편을 통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누구인지 분명히 할 것이다. 야권에 가린 여권의 위태로움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