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A Sun Beam), 에리크 베렌시올.
다른 것도 아니고 꽃이라니. 주린 배를 실컷 채울 수 있는 빵이나 우유도 아닌 꽃이라니. 하고많은 것 중 꽃이라니. 이렇게 말하는 그의 내면의 혼란이 여기까지 전해져 오는 듯합니다. 소년은 난생처음 받아보는 꽃이라는 친절에 마음이 연두부처럼 으깨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습니다. 이는 소년이 사는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종류의 것이었으니까요.
소녀는 어떨까요? 소녀는 들판 위를 쏘다니고 있었습니다. 탐스러운 머리카락이 흐트러지고 붉은 원피스가 구겨질 때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들판의 어느 구석에서 푸른 초롱꽃을 발견하게 된 순간 지금까지의 피로가 모두 사라질 정도로 기쁨에 가득 차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매일 같은 자리에 홀로 누워 있는 소년이 떠올랐고 소년에게 이 초롱꽃을 보여주고 싶어졌습니다. 그가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과 함께 들판을 달려주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소녀가 소년에게 꽃을 내밀며 건넸던 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늘 아래서 일어나 소년을 다시 달리게 했던 초롱꽃 속에 담겨 있던 불빛, ‘넌 소중한 사람이야’가 아니었을까요?
김선현 차의과학대 미술치료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