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7월 2015 밀라노 엑스포의 ‘조선관’(북한관)에서 1유로를 주고 구입한 그림엽서.
조성하 전문기자
마식령은 원산과 평양을 오가는 길에 있는 큰 고개다. 그 지형이 꽤나 험준한 듯하다. 늘 ‘아흔아홉 굽이’란 수식어가 붙어서다. ‘말(馬)도 쉬어(息)가는 고개(嶺)’라는 이름도 그렇고….
1967년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가 김일성대학 동급생인 장성택과 열애 중일 때의 일이다. 장성택을 탐탁지 않게 여긴 김일성은 그를 원산경제대학으로 전학시켰다. 그러자 김경희는 아버지의 차로 한밤중에 마식령을 넘어 원산으로 달려갔다. 평양서 원산은 250km. 김경희는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오빠 김정일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신분이 안 좋으면 좋은 신분으로 만들어 주면 되지, 저러다 차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느냐”며 아버지에게 간청했다고 한다(동아일보 2013년 12월 14일자 주성하 기자의 ‘백두혈통 공주와 애증의 50년’).
원산은 앞바다에서 난류와 한류가 교차해 어종도 풍부하지만 강수량도 많은 곳이다. 그래서 눈이 많이 내린다. 94년 전(1921년) 한 일본인이 처음으로 스키 두 대를 이곳으로 가져와 즐긴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 스키의 발상지’, 그게 내가 마식령 스키장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1927년도 우리 스키역사에서 기념할 해다. 최초의 스키장이 원산 부근 신풍리에서 문을 연 것. 일제강점기였던 당시에 스키어는 주로 경성에 거주하는 산악인이었다. 그들은 용산역 구내 스키구락부(클럽)에 장비를 보관해 놓고 주말이면 경원선 열차로 신풍리를 오가며 스키를 즐겼다.
‘살기 좋다는 원산’은 해변 리조트 발상지이기도 하다. 1935년 갈마반도의 명사십리 해변 석호(潟湖) 주변에 주한 외국인이 처음으로 별장을 지었다. 이들은 선교사와 교사, 기업인 등으로, 창궐하는 전염병을 피해 여기에 모여 지내며 여름을 났다.
그 별장은 1937년 화진포로 이전해야 했다. 중일전쟁을 준비하던 일제가 갈마반도에 비행장을 만들면서다. 화진포는 별장 입지 조건이 원산과 똑같다. 철도가 통과하고 배후에 산이 있으며, 해변엔 석호가 있다. 이기붕 별장이라 불리는 부채꼴 비치하우스도 그때 외국인이 지은 별장이다.
원산은 백두산 칠보산 금강산 평양 개성과 더불어 북측이 조성 중인 6개 관광특구 중 하나다. 원산과 금강산특구는 직선거리로 90km밖에 안 돼 지금은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라는 프로젝트로 함께 개발 중이다. 원산은 경원선과 동해북부선이, 금강산은 동해북부선만이 지난다.
그걸 논의하자면 지금이 적기다. 지뢰와 포격 도발로 야기된 일촉즉발의 긴장이 남북 고위급 당국자 접촉으로 이어지며 오히려 중단된 이산가족 상봉 합의를 이끌어내는 등 분위기가 반전됐기 때문이다. 평창 겨울올림픽도 이제 877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2018년은 한국스키 100년을 3년 앞둔 시점. 북측 경기장에서 겨울올림픽을 분산 개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성화 봉송 루트에 스키 발상지 원산(마식령 스키장)을 포함시켜 남북이 하나 된 모습으로 한국의 스키역사를 세상에 알리는 건 가능하지 않을지.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