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노동개혁 첫발]<下>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노사정 대타협 이후]
지난주 대만에서 열린 노동법 학회에서도 ‘한국형 노동개혁’이 큰 관심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대만 학자들은 한국 학자들을 초청해 발표를 들었고, 특히 임금피크제 도입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중국과 대만도 곧 닥칠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 진짜 개혁은 이중구조 해소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의 주문으로 노동시장 구조 개선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질 때도 ‘이중구조 해소’가 가장 큰 목표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사라지면 고용의 유연성도 같이 확보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공정거래가 정착되면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이 올라간다. 청년들이 대기업에만 집착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사라지는 것. 결과적으로 대기업이 일자리를 억지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 중소기업에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이중구조를 해소하면 ‘청년 고용절벽’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다. 김 위원장도 15일 국정감사에서 “노동개혁의 핵심은 이중구조 해소”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개혁 논의가 일반해고, 취업규칙 변경에만 집중되면서 이중구조 해소 부분은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해고와 임금이라는 휘발성 높은 소재 때문에 진짜 개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노사정 대표와 실무협상팀이 120여 차례에 걸친 논의를 거쳐 상당히 구체화된 방안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물론 합의문만 잘 만들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노사정 각자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합의문도 소용없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재벌 대기업에 부과하는 의무는 ‘노력한다’ ‘자제한다’ ‘협력한다’ 등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채워졌다”며 “반면 해고, 취업규칙 변경 등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내용들은 ‘협력’이란 말을 넣어 현행법을 무력화시켰다”고 주장했다. 앞으로의 논란은 결국 합의문의 서술어 등 ‘디테일’에 있고, 야당 및 노동계와 경영계 사이에 이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심화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합의문만 놓고 보면 굉장히 진보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중구조 해소 방안이 많이 들어가 있다”며 “합의문만 충실히 이행해도 이중구조 해소가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노동개혁의 진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합의문만으로 이중구조가 해소되진 않는다. 노사정이 지속적으로 협의를 이어나가는 한편 필요할 경우 후속 협약과 조치를 추가하는 것도 개혁을 완성하는 방법이다.
실제로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을 체결한 네덜란드는 1993년 신노선 협약, 1995년 유연안정성 협약 등 수차례의 노사정 협약을 추가로 체결했다. 새 위기가 닥칠 때마다 노사정 합의를 통해 개혁을 계속 추가하고 보완했던 것이다. 노사정위 관계자는 “후속 협약으로 바세나르 협약을 보완했기 때문에 그 긍정적 영향이 30년 넘게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기민당)는 집권 뒤에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사회당)의 ‘하르츠 개혁’을 이어받아 더 강한 개혁을 추진했다. 해고 제한 요건을 더 완화했고, 기업이 부담하는 고용보험료율을 인하하는 등 우호적인 투자 환경을 구축하는 데 힘썼다. 노동개혁에 있어서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었고, 장기간 보완을 하면서 개혁을 완성해왔던 것이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민주노총이 빠진 합의는 ‘반쪽의 합의’라고 볼 수밖에 없다”면서도 “합의문을 계속 보정하고 보완해 반쪽의 공간을 채워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