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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 출신 86세 “올림픽 金 따야디”

입력 | 2015-09-17 03:00:00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최고령으로 10번째 참가 양재선씨




양재선 씨는 “열 번째 도전하는 것인 만큼 이번엔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며 파이팅을 외쳤다. 고양=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열일곱에 이북 공장서 배운 ‘문짝 짜는 기술’로 이 나이 되도록 건강하게 잘 살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15일부터 18일까지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리는 제32회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최고령 참가자(가구 제작 직종) 양재선 씨(86)는 다리만 조금 절 뿐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했다. 2001년 72세의 나이로 처음 대회에 나온 이후 그는 스스로 최고령 참가자 기록을 갈아 치우며 올해까지 10번째 출전하고 있다. 이번 대회는 가구 제작 직종 등 정규 직종 20개, 시범 직종 6개, 레저 및 생활 직종 9개 등 총 35개 직종에 전국 17개 시도 대표 선수 374명이 참가하고 있다. 대회 입상자에겐 금메달 1200만원, 은메달 800만 원 등의 상금도 지급된다. 》

황해도가 고향인 그는 1951년 인민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됐고, 전쟁이 끝난 후 전남 목포에 정착했다. 고향에서 배운 ‘목수 일’ 덕에 타향에서도 가구 공장 등에서 일했고, 인연을 만나 결혼도 했다. 하지만 그는 2층 높이에 있는 기계를 정비하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왼쪽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로 장애인(지체장애 5급)이 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30대 중반.

이후 톱질이나 대패질 등 힘든 일은 오래 못했지만 도면을 짜고 현장을 관리하면서 목수 일을 계속했다. 몸은 성치 않았지만 재주가 있었는지 일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60세가 되던 해 현업에서 물러났다.

“은퇴한 후로 10여 년 무료하게 지냈지. 그리고 2001년인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기능 대회에 가구 제작 부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무엇에 홀린 듯 바로 목재상을 찾아갔어. 오랜만에 다시 나무를 만졌는데, 그냥 나무가 손에 착 달라붙더라고. 순식간에 서랍장 하나를 만들었지. ‘아, 나무로 하는 거라면 젊은 애들보다 내가 더 잘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

그해 5월 첫 도전장을 낸 지역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양 씨는 바로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각 지역 금메달 수상자만 출전할 수 있는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 참가했다. 그런데 올해까지 지역대회에선 금메달을 10번이나 땄지만, 안타깝게도 전국대회에선 한 번도 입상하지 못했다.

“나이가 많고 장애가 있지만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남들이 보면 별거 아닌 이 메달들이 내게는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징표 같지. 전국대회 메달만 따면 정말 좋겠는데. 하하. 지역대회도 입상하면 상금을 주거든. 이 나이에도 내 재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젊은이들은 잘 모를 거야.”

그가 출전하는 가구 제작 부문 경기는 17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열린다. 도면에 따라 작은 탁자를 만드는 것이다. 결과는 이날 저녁에 나올 예정이다. 여기서 우승하면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 등 국제대회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경기할 때 6시간 이상 나무를 자르고 짜맞추고 하면 몸에 힘이 쫙 빠지지. 허리랑 다쳤던 다리도 꽤 아파 오지만, 그래도 그냥 기분이 좋아. 지금까지 60년 목수 일 했으니까 앞으로 딱 10년만 더 하려고. 올해는 꼭 1등 해서 올림픽도 나가고 싶어. 이왕 시작한 거 올림픽 금메달 따야디 않갔어?”

고양=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