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함정’의 한 장면.
왜 이런 반응일까? 이 영화는 올해 내가 본 영화 중 최고로 지저분하고 불편하며 비호감이다. 이 영화에는 웬만한 남자의 허벅지만 한 팔뚝을 드러낸 채 배달통을 들고 다니면서 배달음식 전문 애플리케이션의 광고 모델로 요즘 주가를 올리는 배우 마동석이 주연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 그는 여성들이 구토 쏠릴 만한 짓은 종류별로 다 하는 것이다. 외딴섬 음식점 주인인 그는 그곳을 찾아오는 젊은 부부들을 죄다 죽이는 살인마로 나오는데, 여성을 욕하고 학대하는 것으론 모자라 실신할 때까지 구타하고 강간하고 각종 둔기로 내리쳐 살해하기를 무슨 취미생활인 양 천연덕스럽게 한다. 그의 이런 짐승 같은 모습은 여성들이 수컷 혐오증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성에 대한 강도 강간 납치 살해 사건이 일어나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 영화는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훨씬 현실적이고 체감적인 위협과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영화 속 마동석의 존재감은 예상보다 훨씬 대단하다. 살인마에 대한 그의 해석은 영화 ‘실종’에서 문성근이 보여줬던 사이코패스보다 창의적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이 영화가 싫고 마동석이 무서워진다. 왜냐? 마요미(‘마동석’과 ‘귀요미’의 합성어)로 불릴 만큼 근육질의 귀여운 아저씨로만 생각해 온 마동석이 처음으로 이 영화에선 딱 생긴 그대로 행동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함정’에선 그러잖아도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정말로 무서운 짓을 해버리니, 관객은 마치 악몽이 실현된 것처럼 아연실색하고 만다. 뭐랄까. 귀여운 괴물 슈렉이 갑자기 피가 철철 흐르는 도끼를 들고 내게 달려드는 순간을 상상할 때 느껴지는 살벌함과 당혹스러움이랄까. 진짜 무서운 짓을 하는 슈렉을 어찌 여성들이 사랑해줄 수 있겠느냔 말이다. 우리가 이종격투기의 제왕 표도르를 좋아했던 것도 링 위에선 야수인 그가 링만 내려오면 순박한 동네 아저씨로 돌변해 버리는 반전 매력 때문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아트박스 사장님, 왜 이런 영화를 찍으셨나요’ ‘아트박스 사장님 마블리(마동석+러블리) 돌려줘요’ 같은 댓글을 올리는 것은 바로 이런 당혹감의 표현이다.
물론 배우는 예술가로서 모든 도전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언론 인터뷰에서 마동석이 밝힌 대로 “고정된 이미지에 머물기보단 매력적이라고 생각되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는 것은 배우의 권리요 의무이다. 하지만 나는 마동석 아저씨가 들고 다니는 배달통에서 나오는 것이 자장면이나 치킨이 아니라 손도끼와 망치와 식칼인 상황을 꿈에서라도 보고 싶진 않다. 1000가지 배역을 할 수 있는 게 배우라지만, 대중 관객은 때론 배우의 어떤 변신을 용납하지 않기도 한다. 여진구가 연쇄 살인을 저지르거나(‘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송강호가 신세경 이나영 같은 젊고 예쁜 여자와 ‘썸’을 타는(‘푸른소금’ ‘하울링’)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어떤 이미지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그 이미지를 상실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배우가 꼭 풀어내야 할 난제가 아닐까.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