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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유근형]맞춤형 복지의 그늘

입력 | 2015-09-18 03:00:00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양복 한 벌 맞추자.”

기자 시험 합격 통보를 받던 날. 아버지와 서울 이태원의 한 양복점을 찾아갔다. 미국 정치인, 농구 선수 등 해외 유명 인사들의 단골 가게라고 했다. 재단사가 팔과 다리의 품을 측정하는데, 난생 처음 겪는 호사에 우쭐해졌다.

맞춤 양복은 품질도 남달랐다. 면접을 앞두고 아웃렛 매장에서 산 기성복은 어깨가 맞으면 튼실한 뱃살 탓에 허리가 조여 왔다. 하지만 맞춤복은 군대 시절 사랑했던 깔깔이처럼 편했다. 와이셔츠에는 영문 이름의 이니셜까지 새겨 줘 자존감을 배가시켜 줬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양복을 맞추는 거구나.’ 처음 만끽했던 맞춤 양복의 감촉을 아직 잊지 못한다.

‘맞춤형(talor-made)’이란 용어는 개인의 기호를 최대한 배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이 형용사가 부적절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맞춤형’을 표방한 각종 정부 정책이 그렇다. 정책 소비자인 국민을 최대한 배려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막상 내용을 보면 국민 편의를 더 제한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빈곤층을 지원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일정 소득 이하인 저소득층에 생계비, 교육비, 주거비, 의료비를 모두 지원하던 방식에서 각각의 지급 기준을 두는 방식으로 7월부터 개편됐다. 보건복지부는 맞춤형 복지가 실현돼 지원 대상이 약 70만 명이 늘 것이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오히려 지원이 주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해 맞춤형 복지의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4인 가족 기준으로 소득이 중위 소득(4인 가족 약 422만 원)의 28∼40% 가정은 기존에는 수급 대상이었지만 생계비를 못 받게 됐다. 또 주거비의 경우 지자체마다 지원 기준이 달라지면서 비수도권 2인 이상 가구는 지원액이 주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소득이 없어도 근로 활동 연령이면 최저임금의 50%가량 소득이 있다고 간주하는 추정소득제도가 제도화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럴 경우 송파 세 모녀가 다시 살아나 기초수급 신청을 해도 성인이기 때문에 이미 추정 소득이 높아져 지원 자격을 얻지 못하게 된다. 맞춤형 제도가 복지 삭감을 위한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부정 수급자를 색출하거나, 복지에 안주해 자활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추려 내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꼭 필요한 복지까지 ‘복지 재정 효율화’, ‘맞춤형 복지’라는 이름으로 축소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한 복지부 공무원은 내년도 예산안을 수립하면서 “청와대에서 복지 재정 효율화 기조를 세운 뒤 신규 사업은 하지 말고, 있는 것도 줄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라고 전했다. 정책을 수립하는 공무원들의 분위기가 이러한데, 맞춤형 복지가 왜곡된 방향으로 흐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처럼 보인다. 복지부 국정감사장에서 한 여당 국회의원이 정진엽 복지부 장관에게 호통치던 순간이 자꾸 떠올랐다. “복지방해부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화도 안 납니까?”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