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영국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며 재집권에 성공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자신을 포함해 장관들의 봉급을 5년간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복지예산을 삭감하고 앞으로 5년에 걸쳐 공무원 10만 명을 감축하겠다는 목표 아래 총리와 장관 봉급부터 동결하기로 한 것이다. 이후 캐머런 총리는 ‘대처리즘’보다 강력한 노동법 개혁조치를 내놓았다. 파업을 할 수 있는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고 파업 발생 시 대체인력 고용을 허용하는가 하면 노동조합비를 임금에서 일괄 공제하는 것도 금지했다.
캐머런의 선제적 봉급 동결 캐머런 총리는 발로 뛰는 개혁을 보여주었다. 보수당 평의원들을 초청해 공공개혁법안 통과를 호소했다. 야당인 노동당 의원 모임을 찾아 30년 만의 가장 강력한 노동개혁법안에 대해 정책연설을 했다. 7월 20일 복지지출을 삭감하는 개혁안이 의회를 통과한 것도 내각의 봉급 동결을 시작으로 정치권과 거침없이 소통하며 뚝심 있게 밀어붙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청년고용을 위한 재원 마련에 저부터 단초 역할을 하고자 한다”면서 사회 지도층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청년희망펀드’ 조성을 지시하고 사재(私財)를 출연하겠다고 밝힌 것도 캐머런에 못지않은 결단이다. 박 대통령이 펀드에 일시금으로 2000만 원을 기부하고 앞으로도 매달 월급의 20%를 내겠다고 밝힌 것을 시작으로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여당 대표와 최고위원 등 정부·여당 고위직들이 ‘자발적으로’ 참여를 선언했다. 황교안 총리가 “사회 지도층에 이어 민간에서도 참여가 확대될 수 있도록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보아 민간기업들도 좋든 싫든 줄줄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
청년구직자 지원,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연계한 민간 일자리 창출 지원에 쓸 펀드 조성의 깃발을 든 대통령을 보면서 고용절벽 앞에서 ‘헬 조선(지옥+한국)’이라는 자조가 입에 붙은 청년층이 눈물 흘리며 고마워할까. 인터넷에선 반대다. “기업 찬조로, 공무원 기부로 일자리 만들겠다는 게 ‘창조경제’의 핵심이냐”는 냉소적 반응이 적지 않다.
기업의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기업들이 부담 없이 신규 인력을 뽑을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는 게 일자리 정책의 정석이다. 이를 위한 재원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하는 게 정상적인 나라다. 대통령은 자발적일지 모르지만 공무원과 기업들이 사실상 준조세 내는 격으로 팔을 비틀리다시피 해서 모은 돈을 갖고 관(官)이 시혜 베풀 듯 주물러서 무슨 일자리를 만들겠는가.
임금낮추기 연쇄효과를 정부는 청년인턴제 사업에 2013년 기준 2498억 원을 지원했지만 6개월의 인턴 기간을 마치고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율은 65.3%에 그쳤다. 사업주가 신규 채용을 하지 않고 정부지원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인턴을 반복해 채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 청년고용에 필요한 것은 이벤트 식의 전시행정이 아니다.
차라리 대통령이 같은 액수만큼 봉급 삭감을 선언해 장차관, 국회의원, 대기업 임직원에서 노조까지 임금 낮추기 물결이 일어나고, 여기서 생긴 경쟁력으로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 정권 바뀌면 슬그머니 사라질 펀드 모금에 행정력을 쏟기에는 상황이 너무 절박하다. 이런 중요한 정책 결정이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전혀 논의되지 않은 채 대통령의 전격 제안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그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