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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명 이름 적힌 메모는 ‘살생부’?

입력 | 2015-09-19 03:00:00

‘車트렁크 살해범’ 소지품서 발견… 경찰, 추가범행-도주과정 조사
유전자 흔적 없애려 車에 불질러, 경관 2명 특진… 시민 2명엔 포상




‘트렁크 살인 사건’ 피의자 김일곤(48)이 경찰 조사에서 여성을 살해한 이유에 대해 “약속을 안 지켜서”라고 진술했다.

18일 서울 성동경찰서에 따르면 그는 9일 충남 아산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납치한 A 씨(35·여)를 살해한 이유로 “약속을 안 지켰고 차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지르는 등 저항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일곤은 납치한 A 씨가 용변을 보겠다고 하자 천안시 두정동의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웠으나 A 씨가 도주를 시도해 살해했다며 이같이 진술했다.

증거를 없애려고 차량에 불을 지른 사실도 드러났다. 그는 경찰에 “차량 안에 내 유전자도 남아있어 그냥 두고 가면 범인이 저라는 것을 경찰이 알아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일곤이 A 씨 신체 일부를 훼손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도주 과정에서도 치밀함을 보였다. 이동 흔적 파악이 어렵도록 국도를 주로 이용했고 A 씨 차량 내비게이션의 SD카드를 빼버렸으며 울산에서는 다른 차량 번호판을 훔쳐 바꿔 달기도 했다.

경찰은 검거 직후 그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지도 발견했다. 가로 15cm, 세로 20cm 정도 크기의 메모지 2장에는 ‘○○○(이름) 92년 사건 ○○경찰서 형사’ ‘○○○ 재판장’ 등 28명의 명단이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간호사, 병원장 등도 적혀 있으며 일부는 펜으로 이름을 지워 놓았다.

경찰은 김일곤이 이 메모를 바탕으로 추가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A 씨를 살해한 9일부터 검거된 17일까지의 정확한 행적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14일 공개수사로 전환한 뒤에는 서울시 광역수사대 2개팀, 성동경찰서 2개팀 등 총 47명의 수사전담팀을 꾸렸다.

하지만 경찰은 검거 직전까지도 그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까지 파악된 김일곤의 동선은 11일 그가 방화를 저지른 뒤 오후 9시 11분경 동대문구 답십리동에서 택시를 탄 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그가 17일 오전 8시 30분경 성동구의 동물병원에 나타날 때까지는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또 경찰은 김일곤이 9일 서울을 떠나 강원 속초 양양 동해, 부산, 울산 등을 돌다 11일 오전 서울로 돌아왔다고 밝혔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본보가 김일곤이 최근까지 머무른 성동구의 고시원 근처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그는 10일 오전 7시 11분경 고시원 근처에 나타났다.

경찰은 “김일곤이 전담수사관 외에 낯선 사람만 등장해도 입을 닫고 컵을 엎어 버리는 등 수사에 상당히 비협조적”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김일곤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한편 경찰청은 김일곤을 검거한 성동경찰서 성동지구대 소속 김성규 경위(57), 주재진 경사(40)를 각각 경감과 경위로 1계급 특진 임용했다. 검거에 공을 세운 경찰관 6명에게 청장 표창을, 검거를 도운 시민 2명에게는 용감한시민상과 보상금을 지급했다.

박창규 kyu@donga.com·유원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