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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당시 서울 강남구 청담동 거리. 동아일보DB
청담동 골목길에서 산 지도 벌써 19년째다. 처음 이사 왔을 때, 대로에서 강변으로 이어지는, 차 두 대가 겨우 지나다닐 만한 이 골목길은 빌라 세 동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단독 주택인 고즈넉한 동네였다. “물 좋은 고등어 왔어요”라고 외치는 생선 트럭이 지나가고 나면 “고장 난 세탁기, 컴퓨터 삽니다”라는 가전 고물상 트럭이 지나가고, 저녁때가 되면 두부장수의 딸랑딸랑 종소리가 골목길을 지나갔다. 압구정동에서 불과 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 너무나 다른 분위기여서 놀랐다. 세 번째 빌라였던 빨간 벽돌의 우리 빌라가 담쟁이로 완전히 뒤덮이고, 덩굴손이 창문의 프레임을 조금씩 침범하여 완전히 아라베스크 무늬의 사각형을 이루게 되기까지, 골목길의 주택들은 하나씩 사라져 그 자리에 미용실, 웨딩 사진관, 그리고 새로운 빌라 두 동이 더 들어섰다.
헐려 나간 집 중에는 동글동글한 하얀 돌로 폭은 넓게 높이는 나지막하게 담장을 쌓은 집도 있었다. 그 낮은 담장 위에 베고니아가 가득 심겨진 큰 오지 화분 세 개가 올려져, 늦은 봄부터 여름 가을까지 수줍은 듯 화려한 붉은 꽃 색깔이 골목길 전체를 환하게 비추었다. 골목길을 지나다니면서 우리는 모두 행복했다. 그 집 주인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저 단순히 충실하게 자기 삶을 살 뿐인데 그것만으로 남을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 케이크라도 사 들고 가 집 주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런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그 집은 팔리고 헐려 나가 새로운 빌라로 변했다.
어릴 적에는 종로구의 사직공원 옆 필운동에서 살았다. 사직동, 체부동, 누상동, 누하동, 내수동, 내자동, 옥인동 들은 내게는 단순한 청각 이미지의 단어들이 아니라 유년의 꿈속 같은 미로의 공간이다. 지금은 그 이름들도 ‘자하문로’와 ‘필운대로’로 간단히 통합되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길 이름을 발견하고 반가움에 흥분했던 적이 있다. 동네 이름은 그 자체가 문화재다. 남의 나라는 200년간의 세월을 견디는데, 우리나라는 고작 19년도 견디지 못한다. 600년 역사의 고도라고 자랑하면서 우리는 왜 서울의 역사를 그렇게도 지워 버리려 애쓰는가? 찾아보니, 도로명 주소위원회는 2007년에 발족되었고, 2014년 1월 새 주소 체계를 시행하기까지 예산은 4000억 원이 들었다고 한다. 들인 돈은 아깝지만 차라리 백지화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