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乙’이 된 관변단체]정부 통제 벗어난 민간단체들
○ 눈뜨고 볼 수밖에 없는 보훈처
1961년 처음 제정된 대한민국재향군인회법은 130여만 명의 회원을 두고 있는 향군의 조직과 운영을 규정하고 있다. 설립 초기부터 향군회장은 본부의 총회에서 선출되고 국가보훈처의 승인을 받아야만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향군 운영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해 1994년 정부 지명에서 대의원 직선제로 바꿨다. 보훈처의 향군회장 승인 권한도 2001년 개정을 통해 폐지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보훈처가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으면 그만이다. 아직 유권해석에 대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지만 이들 향군법 조항에 따라 보훈처가 회장에게 직무정지를 내리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이 법조계의 다수 의견이다.
향군은 보훈처로부터 매년 세금을 깎아주는 방식으로 약 40억 원을 지원받고 있다. 그해 수익을 보훈성금 명목으로 보훈처에 내면 보훈처는 이 중 일부만 받고 나머지는 돌려주는 방식이다. 성금으로 낸 돈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영업으로 낸 수익에 붙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정부가 쥔 ‘40억 원의 세제 혜택’만 갖고 향군을 견제하기 어렵다.
산하 업체의 사업도 수익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규모(매출)는 크다. 모두 얼마든지 보이지 않게 이권을 챙겨갈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이권이 큰 조직의 수장 자리를 직선제로 뽑다 보니 부정선거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대표적으로 2012년 터진 ‘신주인수권부사채(BW) 사건’이다. 향군은 4개 중소업체와 계약을 맺고 이들 업체가 BW를 발행할 수 있도록 지급보증을 서줬다가 업체들이 돈을 갚지 못하자 790억 원을 물어주게 됐다. 보훈처 관계자는 “향군 지방조직들은 후보자들이 대장 출신이든 병장 출신이든 돈을 더 많이 주는 사람만 뽑는다는 얘기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 자율 앞세우면서 느슨해진 견제
하지만 이들 단체는 1980년대 들어 각각 해당 단체의 설립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 정해져 각각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재편된다. ‘새마을운동조직 육성법’ ‘한국자유총연맹 육성에 관한 법률’ ‘바르게살기운동조직 육성법’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새마을운동중앙회는 1980년, 한국자유총연맹과 바르게살기운동 중앙협의회는 1989년 각각 법인을 설립했다.
비영리 법인이 된 후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각종 지원 혜택은 여전히 누리는 반면 정부의 견제만 느슨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육성법에는 △국가나 지자체가 출연금 및 보조금 지급 △국유재산·공유재산의 무상 사용 △조세 감면 등의 지원책이 명시돼 있다. 반면 감독기관인 행정자치부의 견제와 간섭은 최소화돼 있다. 사업계획서와 예산서를 행자부 장관에게 보고만 하면 될 뿐 행자부가 감사를 할 수 없다. 행자부는 해임, 직무정지 등 인사에 개입할 수단도 없다. 정부가 ‘당근’만 갖고 있을 뿐 ‘채찍’은 갖고 있지 않은 셈이다.
2월 실시된 한국자유총연맹 중앙회장 선거에서는 각종 불법 선거 논란이 불거졌고 일부 후보자 측은 행자부에 투서를 넣기도 했다. 이에 행자부는 특별검사를 실시했지만 시정권고를 하는 데 그쳤다. 감사권이 없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실질적인 처벌 권한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대부분 (투서)내용 확인이 안 돼 특별한 조치를 하지 못했다. 확인된 일부 후보의 사전선거운동 등 행위에 대해서 경고(시정권고)만 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단체의 감사 및 인사권은 단체 스스로가 갖고 있는 상황이다. 횡령, 배임 등 형사상 문제로 행자부가 수사기관에 고발을 하기 전까지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 행자부 관계자는 “보조금이 지급된 사업에 대한 회계검사는 가능하다. 하지만 보조금도 점차 줄어드는 상황이라 이젠 정부가 단체에 어떤 말을 하든 잘 듣지 않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