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승 분당서울대병원 혈관외과 교수
버거스병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이태승 분당서울대병원 혈관외과 교수(53). 이 교수는 “버거스병 환자를 치료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집요함”이라고 말했다. 성남=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0만 명당 8명꼴로 발생하는 희귀병. 발병하면 동맥이 막혀 발가락부터 썩어 들어가고, 왜 발생하는지 아직 연구조차 이뤄지지 않아 예방도 어려운 병. 하지만 환자의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어 모든 버거스병 환자가 낫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태승 분당서울대병원 혈관외과 교수(53)는 “2007년 4월 버거스병에 걸린 김태근 씨(당시 37세)를 만났을 때 생각보다 상태가 나쁘지 않아 설마 9년 동안 8번이나 수술을 거듭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 교수가 만난 버거스병 환자 중 김 씨는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버거스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막힌 동맥을 피해 다른 부위의 동맥을 연결하는 우회술을 써야 한다. 그러나 혈관 굵기가 저마다 달라 연결하기도 어렵고, 혈관을 찾아내는 일도 만만치 않아 수술이 가능한 경우는 20%에 불과하다. 다행히 김 씨는 수술할 수 있는 경우였다.
이 교수는 막혀 있는 무릎 부위의 동맥을 피해 사타구니 동맥을 무릎 밑 동맥을 연결했다. 첫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잠을 못 자고, 발가락이 썩어 들어가는 고통도 멈췄고, 30대 청년의 앞길도 이제 밝을 줄만 알았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뒤 문제는 담배에서 불거졌다. 통원 치료를 받던 김 씨에게 오른쪽 다리에서 다시 버거스병이 발생한 것. 담배는 버거스병을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 교수의 금연 권고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의 힘겨운 삶 때문에 김 씨가 담배를 끊지 못한 것이다. 다행히 두 번째 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이번에는 처음 발병했던 왼쪽 다리의 동맥이 다시 막혔다. 어떤 때는 운동을 하던 중 다쳐 혈관이 막히기도 했다. 담배를 끊지 못했던 김 씨는 이렇게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며 몇 차례 수술을 받았다.
이 교수는 “그래도 젊은 사람의 다리를 절단할 수가 없어 필사적으로 수술에 매달렸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올 2월 김 씨가 다리 통증을 호소하며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이 교수는 “이제는 다리를 절단할 각오를 해야겠다”고 김 씨에게 말했다. 김 씨의 왼쪽 다리는 6번에 걸쳐 수술하는 바람에 수술에 쓸 만한 동맥은 이미 다 써 버린 상태였다. 몇 차례 검사를 했지만 더는 연결할 만한 동맥이 보이지 않았다. 담배 때문에 병이 계속해 재발하는 김 씨 앞에서 이 교수는 “나는 여기서 포기하고 싶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고 한다.
김 씨는 현재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된 상태. 계속 약을 먹고 재활치료를 하면 완치될 수 있을 것으로 이 교수는 보고 있다.
이 교수는 “김 씨가 만약 담배를 끊었다면 그렇게 많이 수술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며 “재발과 악화가 반복돼 수술을 계속해야 할 때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그래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은 것이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 버거스병 발병원인 몰라… 흡연이 악영향 ▼
버거스병은 일명 ‘폐쇄성 혈전혈관염’이라고 불리는 희귀 질환. 발가락 동맥이 점차 막히며 피가 통하지 않아 발이 썩는 병이다.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심할 경우 발, 더 심하면 무릎 밑까지 절단해야 한다. 버거스병은 팔에도 발생할 수 있다.
버거스병은 담배를 많이 피우는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엔 여성 흡연율이 높아지면서 여성 환자도 증가하고 있다. 다만 담배는 병을 진행시키는 원인으로 파악될 뿐 발병 원인은 아닌 것으로 의학계는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버거스병이 발병하면 담배는 반드시 끊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성남=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