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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주제는 ‘허례허식’]<180>도 넘은 SNS 허세
울산에 사는 김기현(가명·25)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차를 세 번 바꿨다. 모두 해외 유명 브랜드의 자동차였다. 김 씨는 차를 바꿀 때마다 사진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셀카’를 찍을 때에도 일부러 자동차가 보이도록 교묘하게 사진을 찍어 함께 올렸다. 차 사진과 함께 ‘같이 드라이브 갈 사람?’ 같은 글을 올리면 사람들의 반응이 좋다. 서로 차를 태워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노골적으로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다. 김 씨는 지인들 사이에서 ‘스타’가 됐다.
그러나 김 씨는 돈을 벌지 못하는 취업준비생이다. 싫증 났다는 이유로 별문제가 없는 자동차를 바꿀 때마다 아버지에게 손을 벌렸다. SNS로 만들어온 ‘잘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계속 차를 바꾼다. 수입차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혼자만 뒤처지는 느낌을 받는 것도 싫다. 남들은 앞다퉈 신차를 사는데 혼자만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김 씨는 “아버지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고 말했다.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던 SNS가 행복을 경쟁하는 장이 됐다. 행복 자랑이 치열해지면서 사람들은 ‘남보다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증을 앓는다. 문제는 이런 행복 경쟁이 과소비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맛있는 음식, 예쁜 물건, 멋진 휴양지 사진을 SNS에 올리려면 돈이 든다. 그러다 보니 돈이 행복의 조건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비싼 차를 타고 비싼 음식을 먹으며 비싼 물건을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과도한 지출을 한다.
유민지(가명·28) 씨는 최근 남자친구와 싸우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남자친구에게 받았던 고가의 선물이나 함께 먹었던 비싼 음식이 특별하고 신기해서 SNS에 올렸다. 그런데 비싼 가방이나 화장품 사진을 올리면 ‘나도 써 봤는데 정말 좋더라’ 같은 글과 함께 ‘나도 이 제품을 가지고 있다’는 인증 사진이 댓글에 달렸다. 알게 모르게 시작된 경쟁에서 지고 싶지 않았던 유 씨는 씀씀이가 커졌다. 남자친구에게 고가의 선물을 요구하는 일도 많아졌다. 남자친구는 유 씨에게 “변했다”며 충고를 하기 시작했다. 직장인 윤미진(가명) 씨는 “주위에도 SNS에 비싼 물건 사진을 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며 “다른 사람의 관심과 시선을 갈구하는 것 같아 오히려 불쌍해 보인다”고 했다.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