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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 작가 “실금 잔뜩 간, 40대 또래들의 삶 담았어요”

입력 | 2015-09-22 03:00:00

소설집 ‘四十四’ 펴낸 백가흠 작가




백가흠 씨는 “40대는 기억보다 망각이 비대해진 나이, 순수했던 시간에 대한 기억을 잃어가는 나이”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四十四(사십사)’(문학과지성사). 그러고 보니 소설가 백가흠 씨(41)도 40대가 됐다. 20대에 등단해 그로테스크한 작품세계를 선보였던 작가다. 그간 장·단편을 넘나들며 창작활동을 펼쳐온 그가 네 번째 소설집 ‘四十四’를 출간했다.

18일 만난 작가에게 실제 나이와는 살짝 차이가 나는 소설집 제목부터 물었다. “여자 얼굴 같더라. 십(十)을 사이에 둔 사(四) 두 개가, 코를 사이에 둔 눈 두 개 같았다. 한자 사(四)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 같았고.” 눈물 맺혀 있되 주룩주룩 울지 못하는 여성, 40대란 그런 것이다. “마음껏 울기엔 의식해야 할 게 많다. 갖고 있는 것도 많고. 그런데 정작 근원적인 건 잊어가는 모습이다.”

표제작 ‘四十四’와 ‘네 친구’가 그렇다. 두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40대에 교수와 기자, 중산층 가정의 주부이지만 겉으로 보기와 달리 속내는 상처투성이다. 교수 제민은 마흔넷이 되도록 유부남과 연애하다 실패하기를 거듭한다. 가정이 전부인 혜진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남편의 바람기에 지쳐 있다. 성형수술로 옛 얼굴을 찾기 어려운 기자 은수는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남자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낸다. 전작들에서 폭력적인 무간지옥의 세계를 그렸던 작가가 40대에 묘사하는 작품들은 이렇듯 ‘생활소설’이다. “예전엔 인생이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사람들 얘기를 썼는데, 이제는 기득권에 근접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모습을 그리게 되더라. 나도 나이를 먹어서인지 그런 모습이 눈에 잘 들어오고.”

‘그런 모습’에 대해 설명을 좀 더 청했다. “20대 땐, 뭐랄까, 작은 집에 살면서 답답해하고 숨막혀하고,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40대가 돼서 본 40대들의 모습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대개 근사하고 멋진 집에서 사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집에 가까이 가 보니 실금이 잔뜩 가 있는 느낌이랄까. 안정적이고 여유가 있어서 집이 무너지진 않겠지만 불안하고 위태로운 분위기였다.”

기존의 시를 짜깁기해 등단하고 습작생들에게 선생 노릇을 하는 사람(‘한 박자 쉬고’), 친구 작가를 질투하고 모함해 곤경에 빠뜨리는 편집자(‘흉몽’) 등 비루하고 비열한 소설의 인물들은 모두 40대다. 그는 이번 소설에서 그렇게 나이를 ‘잘못’ 먹어가는 어른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건강했던 순간들을 잊어버리고 무뎌져 가는 사람들, 그들을 통해 현재 인간과 사회의 얼굴을 비춰 보고 싶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