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각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우리는 패배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과거의 영광을 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한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지 교육을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노부유키’란 육군 대장 출신으로 일본 총리를 잠깐 지낸 후 1944년 7월 마지막 조선총독으로 부임했던 아베 노부유키(1875∼1953)를 말한다. 그는 일본 패전 후 1945년 9월 이 같은 저주를 남기고 귀국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베 총독이 바로 아베 총리의 할아버지라고 해서, ‘아베 예언’은 더욱 그럴싸하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베 노부유키의 한자는 ‘阿部信行’이고 아베 신조는 ‘安倍晋三’이다. 즉 성(姓)의 발음만 아베(あべ)로 같을 뿐 한자는 다르다. 아베 총리는 야마구치(山口) 현 출신으로 아버지는 외상을 지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할아버지는 중의원을 지낸 아베 간(安倍寬)이다.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는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이다.
도쿄대에서 ‘조선총독부 관료의 통치구상’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딴 조선총독부 연구의 권위자인 고려대 이형식 교수(일본근현대사)는 “아베 총독이 그 같은 발언을 했다는 일본 측 기록은 찾을 수 없다”며 “당시 조선총독부는 공식적으로 ‘식민지’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따라서 ‘식민지 교육’이란 말도 사용하지 않았다. 식민지 교육은 광복 이후에 사용한 용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당시 70세 고령인 아베 총독이 불안정한 정세의 조선에 ‘다시 돌아올 것’ 운운하거나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을 ‘위대, 찬란’했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 및 일본의 근현대사 연구자 수십 명에게 확인해 보아도 아베 발언이 실려 있는 원 자료를 보았다거나, 그런 자료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없다. 어떤 이가 애당초 하지 않은 발언이나 행위를 증명해 보이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아베가 귀국한 후인 1945년 12월 당시 주일 맥아더 사령부가 도쿄 자택에서 그를 심문한 기록(영문)이 남아 있다. 아베는 이 심문에서 “35년간의 일본 점령 기간 동안 한국은 상당히 발전했다”, “일본이 취한 정책은 한국에 아주 좋은 정책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한국민의 성향이 서로 싸우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한국인이 아직도 그들 자신을 다스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한국 정부 내에서 당파싸움으로 붕괴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한림대, 아시아문화 제12호, ‘아베 노부유키 조선총독 심문서’, 1996년 9월). 그러나 소위 아베 예언의 핵심인 ‘식민지 교육’ 관련 발언은 하지 않고 있다.
당초 한글로 된 아베 예언은 2013년 말경부터 친절하게 일본어 원문(?)도 첨부되어 인터넷에 나돌고 있다. 그러나 이 일본어 문장은 명백히 일본인이 말하거나, 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장담하건대’를 ‘大言壯語ハゴンデ’로 번역하고 있는데, ‘ハゴンデ’는 한국어 ‘하건대’를 발음 그대로 가타카나로 표기한 것이다. 인터넷의 일본어 자동번역기에 넣어 보니 그렇게 나온다.
누군가가 작문해 인터넷에 올리고, 이를 학계와 언론은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퍼다 날라 기정사실화하고, 거기에 허위 혈연까지 만들어져 유포되고 있는 것이다. 죽은 아베, 산 아베가 비웃는다. 일본이 역사왜곡을 일삼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뭐 있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해서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일본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전거가 없는, 인터넷상에서 만들어진 이야기가 ‘역사적인 명언’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종각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