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리나에게 행운을 가져다준 이는 엉뚱하게도 트럼프였다. “저 얼굴 봐라. 누가 저 얼굴에 표를 주겠나.” 아무리 막말의 대가라지만 여성의 외모를 비하한 데 대한 역풍은 거셌다. 피오리나는 “내가 61세까지 살아온 한 해 한 해와 얼굴의 모든 주름이 자랑스럽다”는 말로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여심을 파고들었다. 남성 중심의 정보기술(IT) 업계 시절 남자들이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려고 미팅 장소를 스트립클럽으로 잡았을 때도 피하지 않았던, 피오리나다운 대응이었다.
▷스탠퍼드대 출신인 그는 로스쿨을 중퇴한 뒤 비서로 출발해 포천지 선정 20대 기업 중 최초로 여성 CEO가 된 인물이다. AT&T, 루슨트테크놀로지를 거쳐 5년 6개월 동안 HP를 이끌었다. 2001년 컴팩 합병은 그가 벌인 가장 큰 사건이다. 덩치는 커졌지만 주가는 떨어졌고 결국 피오리나는 쫓겨났다. 그래도 자서전 ‘힘든 선택들’에서 이 결정에 대해 “두려움에 젖어 평생을 살아온 터라 두렵지 않았다. 옳다고 생각한 대로 행동했다”고 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