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통에서 자라고 있는 벼. 추석을 즈음해 곡물 수확이 많아지는데, 전문가들은 오래 보관할 곡물의 경우 보름달이 지나고 하현달에 수확하는 것이 좋다고 권장한다. 오경아 씨 제공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
달력은 달의 주기를 담은 시간이다. 태양의 주기에 맞춘 태양력을 쓰는 지금도 달력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쓰는 것처럼 우리는 참으로 오랜 시간 달의 시간에 따라 살아왔다. 태양력이 옳으냐, 달력이 옳으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닐 듯하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냥 어느 것을 사용하느냐일 뿐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적어도 식물의 키움과 생명의 탄생에서는 태양보다는 달의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그 이유는 태양이 크긴 하지만 달이 지구와 390배나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달이 어떻게 식물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달의 공전 주기는 대략 29.6일이다. 이 기간에 달은 지구의 그림자에 의해 네 부분으로 변화한다. 첫 번째 부분은 새로운 달에서 반달이 될 때까지, 두 번째는 반달에서 보름, 세 번째는 보름에서 다시 반달, 그리고 네 번째는 반달에서 다시 그믐이 되는 과정이다. 우리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부분을 ‘상현달, 점점 커지는 달’, 세 번째와 네 번째를 ‘하현달, 점점 작아지는 달’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부터 정원사들에게 내려오는 속설이 있다. ‘상현달에는 지구가 숨을 뱉어내고, 하현달에는 지구가 숨을 들이마신다. 상현에는 지구가 습기를 머금어 씨앗을 뿌리면 발아가 잘되고 하현달에는 지구가 숨을 들이마시니 물주기와 영양분 공급이 필요하고 식물을 심기보다는 잡초를 제거하고 곡물을 수확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이런 속설이 과연 신빙성이 있는 걸까?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의 이론은 좀 더 복합적이다. 달과 12별자리의 관계를 관찰해 특정 식물을 일정 별자리 시기에 심으면 훨씬 더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을 알렸다. 그의 이론은 프라우 콜리스코와 마리아 툰 박사가 더 구체화했다. 그들은 물을 상징하는 별자리인 게자리 물고기자리 전갈자리의 때는 잎채소(상추 치커리 시금치)를, 흙을 상징하는 황소자리 처녀자리 양자리 시기에는 뿌리채소(당근 무)를 심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공기를 상징하는 쌍둥이자리 물병자리 천칭자리 때는 식물 속 수분이 줄어들기 때문에 장기간 보관해야 하는 사과와 배 같은 과일을 수확하는 것이 좋고, 불을 상징하는 사자자리 양자리 궁수자리 시기 역시 잡초를 제거하거나 경작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아직은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할 부분이 ‘달과 식물에 대한 연구’에 많이 남아 있다. 최근 유럽인들은 정원용 달력을 ‘루너 캘린더(lunar calender)’로 부르며 음력의 매력에 빠져 있다. 달과 정원일의 연관성이 뚜렷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서양에서 발표된 달의 주기에 따른 달력은 아주 세밀하고 정원 일에 쉽게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잠시 우리 몸에 익숙했던 것을 잊고 있는 사이에 다른 곳에선 그 가치를 새롭게 증명하는 듯해 씁쓸한 마음도 든다.
달의 힘은 꼭 땅에 식물을 심어야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초고층 아파트의 베란다에서도 똑같다. 화분갈이가 필요하다면 이왕이면 보름달이 차기 이틀 전이 가장 좋다. 그때 식물이 가장 물기를 많이 머금어 생존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의할 점도 있다. 툰 박사는 이 모든 달과 식물의 관계가 유기농이었을 때만 적용될 뿐 화학 제초제나 비료가 사용된 땅에서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오경아 오경아디자인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