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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배운 러시아어, 상하이에 어학연수를 가서 배운 중국어, 그리고 이래저래 조금 할 줄 아는 영어까지 포함해 한국어는 내가 접한 외국어 중에서 제일 어려웠다. 가장 늦게 배운 외국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글이 아니라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말로 처음 배워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특히 존댓말은 가장 헷갈리는 것 중 하나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처음 시어머니와 장을 보러 갔다가 “엄마, 감자 살까?” 하고 여쭤봤는데 어머님이 눈을 크게 뜨시면서 “알아서 사” 하시더니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앞장서 가셨다. 며느리한테 반말을 들은 어머니가 얼마나 놀라셨을까. 집에 돌아와 가족이 그 이야기를 듣더니 “시어머니한테 반말하는 용감한 며느리”라며 웃었다. ‘아, 존댓말을 썼어야 했는데’ 생각하고 식사가 끝난 후 어머니께 “제가 드시고 나서 설거지 하겠습니다, 어머니 쉬세요”라고 했다. 그러자 “그래, 자네가 먼저 드시게” 하며 또 웃으셨다.
황당했던 사례는 하나 더 있다. 한국에서 운전을 하기 위해 도로연수를 받을 때였다. 교차로에서 선생님이 “파란불, 출발”이라고 했다. 출발은 했지만 파란불은 보이지 않았고, 운전 중 계속 파란색이 어디 있나 찾아보았지만 결국 파란불은 못 찾고 파란색으로 된 교통표지판에 불이 들어오나 봤는데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영어로는 ‘그린(green)’이라고 부르는 신호등을 한국에서는 ‘파란색’으로 부른다는 것은 그날 연수가 끝날 때쯤에야 알았다. 같은 사물이지만 나라별로 다르게 인식하고 명명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이 인식의 문화가 외국인에겐 자주 어렵다. 한국인이라면 절대로 혼란스럽지 않을 표현에 혼동을 겪기도 한다. 주유소 세차장에 ‘하부세차’라고 쓰여 있는 글을 보고 ‘할부세차’로 잘못 읽어서 ‘세차비가 얼마나 비싸기에 할부로 나눠 낼 정도인가, 절대 오지 말아야지’ 하며 남편한테 얘기를 했더니 황당해했다. 남편은 “만약 어느 세차장에 ‘할부세차’라고 쓰여 있더라도 한국인이라면 ‘하부세차’를 잘못 쓴 거라고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앱’이나 ‘워밍업’ ‘디카’ 같은 외래어는 급변하는 기술과 사회에 맞춰 따라갈 수 있다 해도 요즘 한참 유행하는 ‘꿍꼬또(꿈꿨어)’ 같은 유행어에 익숙해지려면 TV를 좀 더 많이 봐야 하겠다. 언어라는 것이 같은 나라에 살고 있더라도 직업, 사는 곳, 세대, 시대별 트렌드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쓰던 말이 없어지고 모르는 단어가 새로 생기고 하며 항상 변하는 것 같다.
지방의회에서 함께 근무하던 분 중 미국에서 10여 년을 살다 오신 분이 있다. 타국에서 이주민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분이었다. 그분께 외국에 살면서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더니 “아침에 눈뜨고 영어를 써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고 했다. 본사가 외국에 있는 내 남편도 하루는 이메일을 쓰다가 “내가 한국말로 쓰면 이것보단 아주 잘 쓸 수 있는데 답답하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는 웃음이 났다. ‘난 매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데’ 하고 말이다.
※이라 씨(38)는 몽골 출신으로 2003년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다. 2010년부터 4년간 새누리당 경기도의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다문화여성연합 대표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