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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유엔 제70차 총회와 한국

입력 | 2015-09-25 03:00:00


영국 역사학자 존 키건은 이렇게 말했다. “근대 이후 세상을 바꾼 4차례의 회의가 있었다. 30년 전쟁 후인 1648년의 베스트팔렌 회의, 나폴레옹 전쟁 후인 1815년의 빈 회의,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9년의 파리 베르사유 회의,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5년의 샌프란시스코 회의다.” 1945년 6월 샌프란시스코 회의가 열려 유엔헌장이 채택되고 이에 따라 그해 10월 24일 유엔이 창설됐다.

▷올해가 유엔 창립 70주년이다. 우리에게는 광복도, 분단도 70주년인 올해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유엔 제70차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한다. 유엔 없이 대한민국을 생각하기 어렵다. 해방 정국에서 미소(美蘇)공동위원회에 의해 추진되던 독립 절차가 미소의 충돌로 진전되지 못하고 결국 유엔으로 이관됐다. 대한민국은 유엔 감시하의 선거를 통해 탄생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다. 대한민국이 북한의 침공을 받아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준 것도 유엔군이었다.

▷우리나라는 한때 유엔 창설일을 공휴일로 삼을 정도로 유엔을 고맙게 여겼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유엔 회원국이 되지 못하는 상태에서 1976년 북한의 유엔 산하 기구 가입이 허용되자 박정희 대통령은 유엔의 날을 공휴일에서 빼버렸다. 1991년 우리나라는 단독이 아니라 북한과의 동시 가입이라는 조건하에 유엔에 가입할 수 있었다.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인 대한민국으로서는 기분 상하는 일이었지만 국제 평화를 위해 감수해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했던 전쟁이었다.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유엔이 창설됐다. 지난 70년을 돌아보면 유엔은 베트남전 등 지역 규모의 전쟁을 저지하지 못했지만 제3차 세계대전을 예방하는 데는 그런대로 잘 작동했다. 하지만 베스트팔렌 체제도, 빈 체제도, 베르사유 체제도 결국 무너졌다. 다만 유엔은 핵폭탄의 위협 속에 태어났다. 핵전쟁을 막지 못한다면 인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유엔을 지켜온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