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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쟁론]불효자방지법

입력 | 2015-09-25 03:00:00


재산을 증여받은 자녀가 부모를 잘 봉양하지 않을 경우 이를 환수할 수 있도록 한 일명 ‘불효자방지법’이 발의되어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노인들이 공원에 모여 있는 모습. 동아일보DB

《 추석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하지만 모든 자식들이 그렇지는 않은가 봅니다. 부모를 방치하는 불효자도 있죠. 그들을 벌할 방법이 한창 논의되고 있습니다.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불효자방지법’을 발의한 것입니다. 재산을 증여받은 자녀가 부모를 봉양하지 않을 때 이를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민법개정안, 그리고 자녀가 부모를 폭행하는 존속폭행에 대해서는 친고죄와 반(反)의사불벌죄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형법개정안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개정안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 법이 노인 빈곤과 학대를 막고 최소한의 자식 된 도리를 다하도록 강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효도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우려의 목소리 또한 적지 않습니다. 불효자방지법을 둘러싼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







‘먹튀 자녀’ 줄이는 긍정적 효과 있다




장진영 법무법인 강호 변호사

[贊]현행 민법상 부모의 전 재산을 물려받고도 부모를 부양하지 않거나 범죄행위를 하면 부모가 증여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는 있지만 이미 넘겨준 재산은 해제의 효력이 막혀 있기 때문에 사실상 증여 해제는 무의미하다. 또 부모 폭행이나 협박은 부모가 자식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수사가 진행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로 돼 있다.

이런 현행법으로 인해 자식에게 전 재산을 주고도 부양을 받지 못해 거리에 나앉게 된 부모들이 소송을 하더라도 패소할 수밖에 없고 자식이 부모를 때려도 부모가 고소를 하지 않는 한 수사기관이 개입할 여지가 차단돼 있다.

‘불효자방지법’은 민법상 증여 해제의 효과를 막아놓은 부분을 풀어서 부모에게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하거나 부모의 독자적인 생계유지가 어려운데도 부양을 하지 않을 때 이미 자녀에게 넘겨준 재산이라도 반환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고 형법상 존속폭행, 존속협박죄의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자는 것이다.

불효자방지법을 두고 효도를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가 하는 반론이 있다. 이는 법의 취지와 내용을 오해한 것이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부양할 의무는 1960년 민법이 처음 제정될 당시부터 법률상 강제돼 온 것이지 불효자방지법으로 비로소 생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재산의 대부분을 미리 물려주는 것은 자식의 부양의무를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불효자방지법의 취지는 부양을 약속하고 재산을 물려받은 자녀에게 그 약속을 지키도록 강제하자는 것일 뿐 효도를 강제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불효자방지법은 첫째, 부모가 생전에 자식에게 대부분의 재산을 증여했고, 둘째, 부모가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적용된다. 이 두 요건을 모두 갖춘 사례가 흔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실질적인 적용 대상은 그리 많지 않다.

적용 대상이 많지 않다면 효과도 미미할 텐데 무엇 때문에 민법까지 고쳐야 하는가 하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우리 주위에 부모한테 재산을 미리 물려받은 후 ‘먹튀’하는 자식들이 수없이 많은가. 그렇지 않다. 실제 먹튀 자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도 “죽을 때까지 재산을 물려줘서는 안 된다” “끝까지 재산을 쥐고 있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돼 버린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몇몇 먹튀 자녀들의 사례가 퍼뜨린 심리적 위축 현상 때문이다.

불효자방지법이 개정되면 개정법으로 인해 먹튀 자녀로부터 재산을 되찾아온 사례가 보도될 것이고 그 뉴스는 부모들의 심리적 위축 상태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부모세대는 부동산이 자산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부모들이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자녀에게 물려주어 이 부동산들이 현재 꽁꽁 묶여 있는 상태에서 풀려날 수 있다면 일자리 없이 떠도는 자녀세대에게는 단비와 같은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비판론 중에 ‘현저하게 부당한 대우’가 너무 모호하다는 의견이 있다. 현행법의 범죄행위에서 범위를 넓혀 기타 현저하게 부당한 대우까지 증여 해제에 포함하자는 지적이다. 다소 추상적인 것은 맞다. 그러나 입법기술상 다소 불명확한 용어의 사용은 불가피하고 그 구체적 사유는 판례를 통해 형성돼 갈 것이다. 헌재 이혼 사유 중에도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와 같은 추상적 개념을 사용하고 있지만 판례를 통해 그 유형이 정립되고 있다. 또 독일은 ‘기타 배은행위’, 오스트리아는 ‘기타 망은행위’와 같은 개념을 사용해 증여 해제를 쉽게 하고 있다.

빈곤층으로 살지 않아도 되는데 먹튀 자식들 때문에 빈곤층으로 떨어진 절박한 노인들에게 효를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배부른 소리로만 들릴 것이다. 한국 노인빈곤율은 5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단연 1위이고 이는 마찬가지로 압도적 1위를 기록 중인 노인자살율의 원인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르신들에게 스스로를 구제할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효도, 법으로 강제 땐 부작용 초래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교수

[反]우리 한국인에게 가정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서구 사회에서는 개인주의가 발달했지만 한국 사회는 개인주의가 정착하지 못했다. 서구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는 개인이지만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는 가정이다. 한국인들은 ‘나’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자기 집을 말할 때도 ‘우리 집’이라 하고 자기의 부모를 말할 때도 ‘우리 부모님’이라고 한다. 이런 한국인의 화법에는 남과 내가 남남이 아니라 마음을 통해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정서가 깔려 있다.

우리 한국인에게 서툰 것 중 하나가 ‘나누기’를 하는 것이다. 여럿이 식사를 한 뒤 앞서서 나가는 사람이 계산대에서 식대를 사람 수대로 나누어 자기 몫만 지불하고 나가면 이상한 사람이 되기 쉽다. 다 내고 나가든지 그것이 싫으면 구두를 천천히 신는 것이 오히려 좋은 때가 많다. 이처럼 나누기를 잘 못하는 한국인들이 오늘날 서구의 개인주의적 삶의 방법을 좇아가느라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 한국인들은 오늘날 의리를 뒤로 한 채 이익다툼의 치열한 경쟁으로 내몰리면서 몹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경쟁을 하면 할수록 한국인은 점점 외로워진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은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족과 함께 있으면 경쟁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가족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가정은 우리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가장 좋은 보금자리이고 가족은 마음의 상처를 고쳐주는 가장 좋은 의사들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에게 가정과 가족의 의미는 참으로 중요하다.

만약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이 해체되면 한국인들은 외로워서 견디지 못한다. 한국의 힘은 건전한 가정에서 나온다.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이룬 것도 건전한 가정에서 나오는 가족의 끈끈한 정에서 기인했다. 가난한 집의 딸들이 공장에서 힘든 노동을 하면서 동생의 학비를 댔고 건설회사 근로자들이 더운 나라에 가서 번 돈을 자기를 위해 쓰지 않고 가족에게 송금했으며 독일에 가서 일한 간호사들이나 광부들도 번 돈을 알뜰히 모아 고국에 송금했다. 이러한 가족 사랑이 한국을 지탱하는 저력이다.

그러나 최근 국내 가정에서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이혼율이 나날이 증가해 서구 수준을 능가하고 있다. 재산을 둘러싸고 가족 간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점들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더이상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가정을 지키는 출발점은 부모와 자녀가 한마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불효자방지법을 들고 나온 것은 바람직한 발상일 수 있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법으로 자녀들을 효도하게 할 수만 있다면 그것보다 더 쉽고 더 좋은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게 쉽고 좋은 것은 없다. 문제는 법으로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면 겉으로는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다가 속에서 곪아버린다. 속에서 곪아버리면 고질이 돼 나중에 훨씬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겼을 때 법으로 성급하게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다. 근본 원인을 찾아 차근차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증여한 재산을 미끼로 효도를 강요할수록 효도하고 싶은 자녀들의 순수한 마음은 사라져 간다. 순수한 마음이 없이 재산 때문에 효도하는 것은 효도가 아니다. 그것은 돈으로 효도를 팔고 돈으로 효도를 사는 것이다. 그런 효도는 하는 사람도 행복하지 않고 받는 사람도 행복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효도하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부모와 자녀가 한마음이 되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잊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돈이 행복이라는 큰 착각에 빠져 점점 돈의 노예로 변해간다. 불행한 일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 본다면 이번에 발의된 불효자방지법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법이 될 수도 있어 참으로 우려된다.




오피니언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