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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의 문학뜨락]‘2900원의 기적’

입력 | 2015-09-30 03:00:00


문예지 ‘악스트’(은행나무) 첫 호의 돌풍은 화제가 됐지만 창간호 효과일 수 있다는 미심쩍은 시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돌풍’이 2호에서도 이어졌다. 격월간지 악스트의 9·10월호는 일주일 만에 5000부가 나갔다. 출판사 측은 “1만 부를 찍었는데 무난히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악스트는 소설 전문 문학잡지다. 1호와 마찬가지로 2호에도 소설 서평과 단편소설, 장편소설이 실렸다. 소설 서평만 23편이다. 그만큼 서평 비중이 크다.

시인 이우성 씨가 새 앨범을 낸 아이돌 가수 현아에 대한 소회를 실었고, 시인 김민정 씨와 화가 변웅필 씨가 프랑스 작가 막상스 페르민의 소설 ‘눈’을 각각 글과 그림으로 리뷰한 시도도 눈에 띈다. 문학잡지라지만 문학을 잘 모르는 독자도 수월하게 읽어 볼 수 있다.

1호에 단편 ‘양들의 역사’를 실은 소설가 김경욱 씨가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한 독자가 ‘양들의 역사’를 잘 봤다고 말하더라.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작가 동료나 문예창작과 학생 또는 교수들이었다. 그런데 그 독자는 문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었고, 한국 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도 아니었다. ‘악스트’를 통해 봤다는 거다. ‘악스트’가 독자의 외연을 넓히는 데 기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스트의 백다흠 편집장이 주목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른바 ‘문학 바깥’의 독자들이 이 잡지를 찾더라. 요즘은 ‘공유’가 화두인데, 기존 문예지는 문학을 일반 독자들과 공유한다는 의식은 적었던 것 같다. 2호를 읽고 나서 1호를 보고 싶다는 독자들의 문의도 적지 않다.”

그러나 백 편집장은 과월호를 추가로 인쇄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악스트의 가격은 2900원. 1만 부가 팔려도 ‘남는 장사’는 아니다. 그렇지만 문학 독자의 폭을 넓히는 성취를 얻고 있다.

2900원의 기적은 또 있다. 마음산책 출판사는 창립 15주년을 맞아 김용택 시인의 시선집 ‘사랑이 다예요’를 출간했다. 시인이 직접 고른 자신의 작품 30여 편에 화가인 김선형 경인여대 교수의 그림 6컷이 표지와 내용 삽화로 들어갔다. 이 그림은 김 교수가 무료로 기증했다. 조건이 붙었다. ‘책을 읽기 어려운 곳에 그림값만큼 시집을 보내 달라’는 것이다. 대개 본문에 실리는 그림 컷은 장당 10만 원, 표지는 50만∼100만 원 정도다. 화가의 ‘조건’은 계약서에 명기됐다. “보통 그림을 파일로 받는데, 교수님은 붓으로 그린 아날로그 그림을 등기로 보냈다. 작은 사이즈였지만 더욱 감동했다. 행운이 온 거다.” 출판사 측의 전언이다.

이 ‘행운’이 책값을 줄이는 데 보태졌다. 가격은 2900원. 출간 한 달이 지났고 시집은 5000부가 나갔다. 계약을 이행하고자 출판사는 신간이 잘 들어오지 않는 군대와 섬마을 등을 알아보고 있다. 역시 ‘남는 장사’는 아니다. 그렇지만 책을 읽기 어려웠던 곳에 있는 독자들이, 덕분에 새 시선집을 보면서 즐거워할 것 같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