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동·경제부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오랜 관치금융과 은행권의 보신주의 등을 생각해보면 한국 금융이 아주 우수한 성적표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쯤은 짐작이 갑니다. 그래도 부탄이나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건 조금 과하다 싶습니다.
여기엔 조사의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WEF의 경쟁력 조사는 총점의 90%가량을 자국 기업인의 주관적 만족도로 평가합니다. 국내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에게 “한국 금융의 점수를 매겨 달라”고 하는 식이죠. 요즘 아무리 달라지려 노력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갑(甲)의 위치에 있는 금융회사들을 기업인들이 곱게 볼 리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금융서비스 이용 가능성’(99위), ‘대출 용이성’(119위), ‘은행 건전성’(113위) 같은 세부 항목의 점수가 바닥을 헤맸습니다. 만약 “우간다와 비교했을 때 한국 금융의 경쟁력이 어떠냐”고 물었다면 순위가 많이 달라져 있었을 겁니다.
금융위는 자료에서 “한국은 시가총액 수준, 은행 지점 수 등 여러 지표가 아프리카보다 월등히 양호하다”며 “WEF 조사는 국가별로 객관적인 비교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간 여러 차례 WEF 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우리 금융업을 질타해왔기 때문에 금융개혁에 매진하는 정부로서는 더 예민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정부가 반성할 부분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순위야 어떻든 간에 우리 기업인들의 금융업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또 성적이 좋았을 때는 정부의 치적이라 홍보해놓고 막상 순위가 떨어지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조사의 공신력을 깎아내리는 것도 이중적 태도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유재동·경제부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