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페이지 ‘고려대 대나무숲’. 지난해 11월 한 학생이 이와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 익명의 제보를 보고 해당 교수에게 수업을 들었던 다른 학생들도 ‘나도 같은 경험이 있다’며 힘을 실어줬다. 댓글이 줄을 이었다. 해당 교수에 대한 비난 여론이 학내에 일었다. 교수의 ‘말실수’는 학생들 사이에 확산됐고, 급기야 지난달 22일 이 학교 정경대학 학생들은 교수의 해임과 재발 방지 약속을 학교 측에 요구했다.
분노는 학교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고려대 대나무숲’(사진)에 올라온 글은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이곳저곳으로 퍼졌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에 대한 깊은 연민과 역사적 인식을 안고 있던 많은 이들이 분노를 표했다. 해당 교수의 이름을 네이버에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위안부’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다.
기자는 지난달 경기 광주시에 있는 ‘나눔의 집’에 가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쉼터를 직접 둘러봤다. 할머니들이 오순도순 자매처럼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분들은 각방을 쓰며 서로 교류를 잘 하지 않는다. 같은 피해를 입은 여성들끼리도 정을 나누지 못할 만큼 경계심이 강한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강일출 할머니(87)는 이야기 도중 찢긴 흔적이 남은 뒤통수를 내보이며 “조금만 벗어나도 붙잡아 군홧발로 머리를 걷어차는 일본군이 무서워 나중엔 도망가길 포기했다”며 “지금까지 가족들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치욕의 흔적”이라고 말했다. 교수의 주장처럼 위안부가 자발적 성매매에 나선 여성들이라면 왜 탈출을 꿈꾸다가 군인에게 짓밟히고, 트라우마로 인해 작은 방에 자신을 가두며 살게 됐을까.
다행인 것은 이처럼 위안부의 역사에 대해 왜곡된 발언을 일삼는 일부 교수의 행동이 SNS에 개설된 ‘○○대 대나무숲’을 통해 제보되는 일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대나무숲은 임금의 귀가 당나귀 모양으로 변한 사실을 어디서도 말하지 못해 속앓이를 하던 신하가 아무도 없는 대나무숲에서 마음껏 소리를 질렀다는 전래동화에서 따온 말이다.
페이스북에서 ‘대나무숲’을 검색하면 전국 각지 대학의 총학생회가 운영하는 ‘○○대 대나무숲’들이 눈에 띈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말 못할 가정사의 아픔, 연애의 고통, 학업의 어려움, 교수의 행동이나 언행에 대한 평가를 쏟아낸다. 이들의 모든 외침이 학교에 전달되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공론화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학교도 문제가 심각하다 판단하면 진상조사에 나서거나 그에 따라 징계위원회를 열기도 한다. 논란이 됐던 고려대 교수는 진상조사를 받고 있다.
얼마 전엔 전직 대통령의 딸인 교수가 ‘○○대 대나무숲’에 올라온 제보로 수업에서 교체된 일도 있었다. 이 교수가 교양영어 수업에서 학생들이 예습을 제대로 해오지 않는다며 정원 40명 중 절반인 20명을 결석처리하고 내쫓았다는 제보가 올라온 것. 학생에게 예습을 요구하는 것은 교육자로서 당연할 수 있지만, 과제도 아닌 자율적인 예습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 같은 행동을 한 것은 과하다는 비난이 일었다. 결국 학교 측은 사실 확인을 했고, 학생들의 민원 사항을 파악해 담당 교수를 교체했다.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