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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은 ‘죄송하다’, 협회는 ‘모르쇠’ 한국농구의 슬픈 자화상

입력 | 2015-10-03 05:45:00

한국남자농구대표팀. 사진제공|대한농구협회


열악한 환경 속에 뛴 선수들 올림픽 진출 실패에 연신 ‘죄송하다’
누릴 것 다 누린 회장단 ‘오해가 있었다’고 발뺌
대표팀 후원 계획은 뒷전, 대회 개최 언급


“기대에 못 미쳐 죄송합니다”

한국남자농구대표팀은 1일 중국 창사에서 열린 ‘2015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 8강전에서 이란에게 62-75로 무릎을 꿇으면서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진출이 좌절됐다. 이란 전 패배 후 연락이 닿은 선수들은 ‘기대에 못 미쳐 죄송하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번 대표팀 선수들은 훈련기간 동안 서로 간에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어느 때보다 많이 했다. 서로의 단점을 채워주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록 훈련 여건은 열악했지만,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 서로를 감쌌다. 1차 조별리그 2차전에서 중국에 20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한 채 73-76으로 역전패를 당했을 때, 가드 김태술(KCC)은 “내가 너무 못해서 역전을 당했다. 내가 (양)동근이 형의 체력 부담을 덜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고 말했다. 양동근(모비스)은 “(김)태술이는 대회 내내 몸이 안 좋았다. 후배들의 단점을 커버했어야 했는데,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한 선수여서 그렇다.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며 패배를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김종규(LG)는 “형들을 받쳐주지 못했다. 형들이 후배들을 격려해가면서 정말 열심히 했는데, 내가 너무 부족해서 미안했다. 팬들에게도 죄송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혜택은 회장단, 사과는 선수들 몫

선수들은 (지난해에 비해)반 토막 난 6만원의 일당을 받고 두 달간 땀을 흘렸다. 비행기 이코노미 클래스에 몸을 구겨 앉았고 호텔에서 손빨래를 했다. 호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배고픔이 채워지지 않을 때에는 호텔방에 삼삼오오 모여 라면에 밥을 말아 먹었다. ‘국가대표’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환경이지만 위기의 한국 농구를 위해 코트 위에서 열정을 쏟았다.

한국 남자농구는 올해 여름 내내 잇단 불법스포츠도박 관련 사건으로 많은 팬들이 등을 돌렸다. 선수들은 대표팀의 승리를 통해 농구 인기의 불씨를 살리는 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국가대표의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국가대표라는 수식어에 어울리는 여건은 전혀 누리지 못한 가운데에서 선수들은 이번 올림픽 진출 실패의 원인을 각자 자신에게로 돌렸다. 또한 팬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미안해했다.

선수들이 각자에게 미안해하고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할 때, 대한농구협회는 어땠나. 회장단은 비즈니스클래스를 이용하고 고급호텔에 머무는 등 회장단의 혜택을 다 누리면서도 가난한 대표팀 사정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대표팀 훈련기간에도 선수단에 ‘지원이 부실해 미안하다’는 사과의 표시 한번 없었다.

언론과의 현지 인터뷰에서도 ‘선수들을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말 대신 ‘오해가 있었다, 비행기 탑승 관련 일은 잘 모른다. 담당자가 규칙에 따라 잘 했을 것이다’라고 발뺌하기 급급했다. 대표팀을 살찌울 스폰서 확보도 못한 상황에서 향후 예산 확보에 대한 계획을 이야기해도 모자랄 판에 아시아선수권 유치를 주장했다.

방열 대한농구협회 회장은 지난해 10월 3일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직후 축승회 자리에서 “개천절(10월3일)에 한국농구의 하늘도 열렸다”며 축배를 들었다. ‘협회가 애를 많이 썼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어렵게 열린 한국농구의 하늘은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닫혀버렸다. 지난해 작은 공로라도 자신의 손길이 닿은 일에 대해 그토록 티를 냈던 이들의 입은 이번 올림픽 진출 실패에 굳게 닫혔다.

안될 때는 ‘모르쇠’다. 반성은 오로지 선수들의 몫인 듯하다. 한국 남자농구의 슬픈 자화상이다.

정지욱 기자 st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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