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논설위원
12월 기후협약 성공에 골몰
국내 언론에선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이 새마을 고위급 행사에서 만나 서로 힘을 실어준 것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반 총장이 가장 신경을 쓴 행사는 기후변화당사국 정상들과의 오찬이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강대국의 협조로 이런 노력이 결실을 앞두고 있다. 파리에서 구속력이 있는 합의안을 도출해내면 환경 분야에서 세계사적인 성취를 이룬 셈이다.
이 측근은 “반 총장이 국내 정치에 끌려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유엔 사무총장이 되려 한다고 됐겠느냐. 하늘의 뜻이…”라며 여지는 남겼다. “파리 회의에서 좋은 성과가 나오면 유엔이 힘을 기울인 지구촌의 빈곤 퇴치 활동과 함께 업적을 평가받는 날이 올 것”이라며 내년 반 총장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떠오를 수 있다고 했다.
반 총장이 2016년 12월 말 사무총장을 마친 뒤 정치에 뛰어들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여야 정치권은 어떻게든 그를 대선과 엮기 위해 집요하게 유혹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전 유엔 사무총장 가운데 2명이 퇴임 후 대선에 출마했다. 오스트리아 출신 쿠르트 발트하임만 당선돼 6년 임기의 대통령을 지냈다. 그러나 대선 전 폭로된 나치 군복무 경험 때문에 미국 방문도 못 했다.
대선주자라는 관점에서 반 총장은 출마 의사를 밝히기 전부터 1위를 달린 높은 지지도와 합리적이고 유연하다는 점에서 고건 전 국무총리와 닮은 점이 많다. 현실 정치의 벽을 뼈저리게 체험했을 고 전 총리의 실패담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진흙탕에 발을 딛고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이 된들 지금 같은 정치구도 아래선 고생만 하지 성과를 낼 수도 없다.
유엔 경험 살릴 곳은 국외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을 맡은 사람”(초대 사무총장 트뤼그베 할브단 리)이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말이 있다. 수행하기 어려운 범지구적인 역할을 맡았으나 권한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역할을 수행한 경험이 빛을 볼 수 있는 공간은 국내가 아니라 나라 밖이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