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육아전쟁 ‘新기러기 시대’]
한국의 기러기 가족을 소개한 워싱턴포스트 지면. 2005년 이 신문은 1면 대형 박스와 2개면에 걸쳐 자녀 교육 등으로 인해 흩어져 사는 한국의 기러기 현상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동아일보DB
영화 ‘우아한 세계’의 한 장면. 이 영화는 ‘기러기 아빠’인 한 가장의 비참한 세계를 다뤘다. 2007년 개봉했을 당시 기러기 아빠는 이미 언론 등을 통해 잘 알려져 있었다. 가족의 무게중심이 자녀에게 쏠려 삶의 형태가 이리저리 조립되는 기러기 부부 현상은 언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을까.
국내에서 기러기 아빠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2000년대 초. 언론에서 관련 현상을 다루기 시작하면서부터다. 2년 후인 2002년 국립국어원은 이를 신조어 사전에 등재했다.
광복 이후 산업화를 겪으며 기러기 부부의 역사도 2막이 펼쳐졌다. 1990년대 해외유학 바람을 타고 미국 문화를 경험한 이들이 한국에서 가정을 꾸려 아내와 자녀를 외국으로 보내는 것이 대표적. 지옥 같은 입시문화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공부하고 영어 능력까지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 아버지들은 자식과 부인을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로 보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러기 부부’가 여기에 속한다.
당시는 해외 주재원 파견도 활발해졌을 무렵이다. 이들 중에선 현지에서도 기러기 부부를 자청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오지나 동남아 개발도상국에 파견된 이들이 국제학교가 잘 갖춰진 인접 나라에 가족을 보낸 것. 1990년부터 약 10년간 해외 파견근무를 했던 대기업 직원 A 씨(62)는 “주 활동무대가 동남아 오지였는데, 아들과 아내를 큰 국제학교가 있는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도록 한 뒤 주말이나 휴가를 이용해 수시로 만났다”고 말했다.
여성의 학력과 취업률이 높아지면서 ‘기러기 엄마’도 등장했다. 남편이 군인이고 본인이 대기업 직원이었던 이모 씨(43)는 남편을 시댁에 살게 하고 본인만 자취를 하는 기러기 엄마로 8년을 살았다. 그는 “기러기로 살며 벌어놓은 돈으로 딸 학비 등을 마련했다”며 “욕심껏 키우려니 직장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산하 기관들이 강원, 전북, 경남 등 각 지역의 혁신도시로 이주함에 따라 ‘국내판’ 기러기 부부가 급증했다. 한 고위 공무원은 “2013년 세종시로 옮아온 뒤 여기도 저기도 기러기 부부 천지”라며 “아이가 중고교생인 경우엔 기존에 살던 지역에서 많이 살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이거나 유치원생일 경우엔 신설 교육기관이 많은 세종시로 옮아온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기러기 부부가 주로 학령기 자녀의 교육 문제에 기인했다면, 육아로 인해 신(新)기러기 부부로 사는 김모 씨의 사연은 2000년대 이후 맞벌이 부부가 급증했지만 조부모의 도움 없이 부모의 힘만으로 자녀의 육아를 책임지는 게 힘들어진 현재의 상황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기러기 현상은 결국 부모와 자녀가 함께 어우러지는 가족을 추구하기보단 자녀를 위해선 부모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준다. 워싱턴포스트는 2005년 우리나라의 ‘구스파더(goose father·기러기 아빠)’ 문화를 중심으로 깨진 가정의 형태를 3면에 걸쳐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그렇다면 기러기 부부가 우리만의 현상일까. 우선 중국동포 사이에서도 기러기 부부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부모 중 한쪽이 한국에 와서 돈을 벌고, 중국에 남겨진 가족에게 비용을 송금하는 이들을 칭한다. 중국동포 온라인 커뮤니티 ‘광동이얼싼’의 한 이용자는 “아버지는 한국, 어머니는 중국 옌지, 나는 또 다른 곳에 살며 1년에 한 번씩밖에 못 본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중국인 사이에서도 1990년대 우리나라와 비슷한 형태, 즉 교육을 위해 아내와 자녀만 외국에 나가는 형태의 기러기 부부도 나타나고 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