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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복 책, 국정원장 허가 안받아… 4년전에도 비밀누설 물의

입력 | 2015-10-03 03:00:00

국정원 “金 前원장 형사고발”




국가정보원이 2일 김만복 전 국정원장에 대한 형사고발 등 법적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한 것은 비밀엄수를 명시한 국정원직원법을 위반한 것이 명백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원장이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백종천 전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함께 쓴 책 ‘노무현의 한반도 평화구상-10·4 남북정상선언’에는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관련 비화가 담겨 있다. 이 책에는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정상회담 전인 9월 서울을 비밀리에 방문해 청와대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난 일, 정상선언문 초안에 남북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내용이 포함됐다가 삭제된 사실 등이 포함됐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 전 원장은 국정원직원법 제17조에 따라 국정원 직무와 관련된 사항을 발간하거나 이외의 방법으로 공표하려는 경우 미리 현직 국정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김 전 원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국정원장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에 펴낸 책에 비밀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원장의 주장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은 “2007년 당시 국정원이 대외 공개 목적으로 만든 10·4 선언 해설집 자료에 현재까지의 상황을 추가했다”고 한 부분. 이는 자신이 국정원장으로 있을 때 국정원이 만든 미공개 자료를 책에 활용했다는 얘기가 된다. 김 전 원장은 “내가 거기서(2007년 국정원 해설집) 몇 개 인용해 썼다”고 말했다.

국정원직원법 규정을 봐도 ‘비밀이 아니어서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김 전 원장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국정원 관계자는 김 전 원장이 ‘책 내용이 비밀이 아니기 때문에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한 데 대해 “그 판단은 현직 국정원장이 하는 것이지 본인이 할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국정원에서 고발장이 오면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분위기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국정원직원법의 비밀누설죄는 적용 범위가 생각보다 넓고 특별법이어서 우선 적용된다”고 말했다. 김 전 원장은 2011년 남북 정상회담에 관한 미공개 내용을 일본 잡지에 기고하는 등의 행동으로 물의를 빚었고 대국민 사과를 한 적도 있다. 이에 국정원이 직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김 전 원장은 통화에서 “국정원장이 책을 쓸 때는 국정원의 허락을 받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가 “애매하다. 잘 모르겠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허가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임 전 원장은 2008년 회고록 ‘피스메이커’를 펴내면서 “대부분 문제에 대해 이제는 국가기밀이라고 할 수 없다”면서도 “저의 국정원장 재직 기간의 사항에 대해서는 정해진 법에 따라 발간 허가를 받았음을 밝혀둔다”고 밝혔다. 기밀이 아니라도 국정원장 재직 시절의 일은 국정원의 허가를 받았다는 뜻이다.

한편 김 전 원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간에 상시 전화통화를 할 수 있는 핫라인이 있었다. 핫라인을 통해 남북 정상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고 보도됐다. 하지만 그는 이날 10·4 남북정상선언 8주년 기념 토론회에서는 “양 정상이 한 차례도 직접 통화한 적이 없다”고 언론 보도를 부인했다. 별도의 통화 라인을 구축했지만 양 정상이 직접 활용하지는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윤완준 zeitung@donga.com·조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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