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겐 엄격하고 약자 보듬은… 故한기택 판사 10주기 추모 토론회
고 한기택 대전고법 부장판사(별세 당시 46세·사진)가 2005년 2월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며 동료 판사들에게 남긴 마지막 글의 한 토막이다. 모든 걸 다 바쳐 오로지 재판에만 열중한 까닭에 동료 판사들 사이에서 ‘목숨 걸고 재판하는 판사’로 불렸던 그는 같은 해 7월 24일 말레이시아에서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던 중 심장마비로 숨졌다.
10년 전 작고한 한 판사를 기리는 공개토론회가 3일 서울대 법학교육 100주년 기념관에서 ‘한기택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우리법연구회 주최로 열렸다. 이 자리엔 박시환 전 대법관 등 판사 및 변호사 80여 명이 참석했다. 박 전 대법관은 한 판사의 생전 모습을 담은 동영상 상영이 끝난 뒤 추모의 글을 읽다 눈시울을 붉혔다.
한 판사가 세상에 남긴 판결들을 보면 무엇에 목숨을 걸었는지 알 수 있다. 2003년 3월 그는 한국인과 결혼한 중국인 배우자가 중국에 두고 온 성인 자녀의 한국 초청을 법무부가 막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2004년 9월엔 앞을 못 보는 사람들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주고 있는 것은 이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비장애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시각장애인의 생존권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처럼 그가 남긴 판결들은 사회적 약자와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데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 판사’가 될 수 있는지를 놓고 깊은 고민의 얘기들이 오갔다. 장철익 서울고법 판사는 “우리는 목숨 걸고 하는 재판(성의), 경청과 소통이 있는 재판, 당사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는 재판 등 세 가지를 통해 좋은 판사 그리고 좋은 법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