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백지화’ 홍역 이어… 이번엔 체육시설? 산양목장?
15년간(1978∼1993년) 쓰레기 매립장으로 쓰이던 난지도(蘭芝島·서울 마포구)는 2002년 생태·환경공원인 월드컵공원으로 변신했다. 이 가운데 옛 난지도 제1매립지는 ‘노을공원’(33만9900m²)으로 단장됐다. 해질녘 석양이 가장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노을공원은 2000년대 초반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서울시가 공원을 만들 당시 이곳은 원래 9홀 규모의 골프장을 건설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여론의 따가운 비판에 부딪혀 골프장 건설은 백지화됐다. 이후 노을공원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시민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최근 노을공원의 활용 방향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우선 관할 구인 마포구는 노을공원에 시민 체육시설을 조성할 방침이다. 올 6월 연구용역을 통해 인조잔디 축구장 3개, 풋살장 2개, 농구·배드민턴용 다목적구장 2개, 관리동, 주차장 등 구체적인 건설 계획까지 마련했다. 총 사업비는 약 60억 원. 마포구는 ‘비용 대비 편익값(BC)’이 ‘1.03’으로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편익값이 ‘1’이 넘으면 경제성이 있는 것이다. 이홍주 마포구 생활체육과장은 5일 “민선 5기(2010∼2014년) 시절부터 서울 체육인들의 축구장 건립 요구가 매우 거셌다”며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을 보유한 ‘축구도시’ 마포구의 상징적 의미와 노을공원에 공터가 많은 걸 고려했을 때 축구장 건설의 최적지다”라고 주장했다.
“산양을 방목하자”는 이색 아이디어도 나왔다. 농업 관련 민간모임인 도시농업포럼은 올 5월 서울시에 ‘노을공원 약 7000m²에 걸쳐 울타리를 치고 산양유(乳)를 생산하는 유산양 1개 무리(수컷 1마리, 암컷 4∼5마리)를 시범 방사하자’는 내용의 제안서를 냈다. 유산양은 성격이 온순하고 개, 고양이보다도 친화력이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공원 방문객이 유산양을 접하면서 마음을 치유하고 나아가 ‘대관령 양떼목장’ 같은 관광 상품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환경단체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생태계 재생이 진행되고 있는 노을공원을 있는 그대로 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3년 서울시가 노을공원 생태를 조사한 결과 식물 486종과 동물 484종 등 총 970종의 생물이 사는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인 맹꽁이와 삵도 서식한다. 김동언 서울환경운동연합 생태도시팀장은 “노을공원은 단순한 빈 땅이나 풀밭이 아닌 서울 생태계의 보고(寶庫)다. 아무리 친환경시설로 체육시설을 만들어도 10년 넘게 겨우 회복한 공원 생태계를 다시 파괴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산양을 방목하는 것도 생태계 훼손과 구제역, 브루셀라 등 감염병 확산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지역 환경단체들이 반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축구장과 유산양 사육 등 노을공원 활용을 놓고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현재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충분한 기간을 갖고 분석 검토한 뒤 활용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