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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염희진]방팔이와 파스타 따귀

입력 | 2015-10-06 03:00:00


염희진 문화부 기자

이달 1일 종영한 SBS 드라마 ‘용팔이’는 시청률 20%를 넘기며 올해 평일 밤 방영된 드라마 가운데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병원을 배경으로 한 의학드라마이면서 조직폭력배 왕진을 다룬 것이 신선했다.

하지만 잘나가던 드라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드라마 중반부터 과한 간접광고(PPL)로 논란을 빚었다. 특히 9회에서는 여자 주인공의 발을 주물러 주던 남자 주인공이 “그럼 우리 방을 구할까”라며 휴대전화를 꺼내 자신이 광고모델로 활동 중인 ‘직방’ 애플리케이션을 켜서 오피스텔을 알아봤다. 누리꾼들은 용팔이가 아니라 ‘방팔이’가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드라마는 첫 회부터 속도감 있는 전개로 호평을 받았지만 여주인공이 병상에서 일어나면서부터는 무자비한 복수극으로 변하며 조연들이 잔인하게 죽어갔다. 종영 1회를 앞두고선 여주인공이 간암에 걸리며 요즘 유행어로 ‘(시청자들의) 암 유발 드라마’가 됐다. 중국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투더우(土豆)에서도 용팔이에 대해 “잘 나가다 왜 산으로 가느냐”는 중국인들의 댓글이 이어졌다.

8월 18일 MBC 아침드라마 ‘이브의 사랑’은 드라마가 한순간에 코미디로 전락한 또 다른 사례다. 이 드라마는 시어머니가 며느리 얼굴에 파스타를 던지는 모습이 그대로 방영되며 ‘파스타 따귀’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지난해 7월 MBC 아침드라마 ‘모두 다 김치’에서도 포기김치로 남자 배우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이 방영됐었다.

이 파스타 따귀 건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주의 결정을 받았다. 이 드라마의 책임 프로듀서는 “극중 주연 배우가 갑작스레 하차하며 생긴 공백을 처음 데뷔한 작가가 메우다 보니 치밀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작가나 배우 한 사람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한국 드라마의 민낯이 드러난 셈이다.

최근 만났던 한 미국인 드라마 연출가는 흥미로운 얘기를 해줬다. 그는 한국 드라마에 빠져 현재 K드라마를 주제로 한 웹드라마를 촬영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시청률과 시청자 의견을 그때그때 반영해 실시간으로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한국 작가의 ‘일당백’ 시스템은 한국 드라마의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또 이것이 한류 드라마를 만든 큰 동력이었는데도 저평가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으로 이런 경쟁력을 살리지 못하고 ‘막장 드라마’가 반복되는 것은 드라마 제작 환경의 문제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국내 드라마 제작자 사이에서는 “드라마는 작가놀음, 영화는 감독놀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작가 한 명의 서투른 필력이나 검증되지 않은 세계관이 드라마에 고스란히 투영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작가 한 명의 필력과 배우들의 연기 투혼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방송국의 짬짜미 편성 탓이 크다. 다행히 올해 말부터 KBS ‘태양의 후예’와 SBS ‘사임당, 더 히스토리’ 등 100% 사전제작 드라마가 촬영을 시작한다. 드라마 업계의 기대대로 이번 시도가 한국 드라마의 제작 환경을 바꿔 제2의 ‘방팔이’가 나오지 않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염희진 문화부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