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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변곡점서 스스로 결정할 때 참 행복”

입력 | 2015-10-07 03:00:00

‘자기 결정’ 국내 출간한 獨 철학자 페터 비에리 e메일 인터뷰




《 “자기 결정의 행위, 인간이 스스로 주권을 쥐는 행위를 통해 인간은 자아를 완성해 갈 수 있습니다.” 영화화한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독일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페터 비에리(71)는 ‘자기 결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자기 결정’(은행나무)은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그의 저서 제목이다.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언어철학을 강의하고 있는 그는 창작에도 재능을 발휘해 ‘리스본행…’을 비롯해 ‘레아’ ‘피아노 조율사’ 등의 소설을 선보였다. 그는 소설을 쓸 때는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

 

‘자기 결정’을 출간한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페터 비에리는 평범한 사람들도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교양을 쌓을 것을 권했다. “평생에 걸친 이런 자기계발이 자기 결정”이라는 것이다. 은행나무 제공

‘리스본행…’은 국내에서만 5만 부 이상 팔렸고, 지난달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국감 도중 몰래 읽은 책이다. 땅콩회항 사건이 화제가 되면서 지난해 번역 출간된 그의 책 ‘삶의 격’이 여러 차례 인용되기도 했다.

‘자기 결정’은 ‘삶의 격’에 이어 존엄성 문제를 주제로 삼았다. 철학서이되 어렵지 않은 언어로 쓰여 독자들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최근 그를 e메일을 통해 인터뷰했다.

―‘삶의 격’에서 가장 절실한 가치로 존엄성을 설파했는데, 이것이 ‘자기 결정’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자기 결정은 존엄성을 지키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삶의 방식이다. 상황에 휩쓸리거나 타인에 휘둘리지 않고 모든 삶의 변곡점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스스로 결정할 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

―타인에게 휘둘리게 되면 존엄성을 갖기 어렵다는데, 우리는 사회적 동물 아닌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존엄성을 갖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인간관계를 자신의 독립성을 해치는 게 아니라 서로의 독립성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관계로 이끌어 나가면 된다. 이런 관계는 타인과 자신에게 모두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촉매제가 된다.”

‘리스본행…’에서 주인공인 라틴어 교사 그레고리우스는 안온한 일상을 버리고 홀연히 리스본으로 가는 열차를 탄다. 주인공의 갑작스러운 인생의 행로 변경에 많은 독자는 ‘충격을 받았지만 공감하고 지지한다’는 반응을 보냈다.

―소설 ‘리스본행…’ 속 주인공도 스스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꾼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다. 삶의 새 방향을 스스로 제시한 거다. 이런 능력이 곧 자기 결정과 존엄성의 표현이다.”

―한국에서 이른바 ‘결정 장애’가 화제가 됐다.

“결정 장애는 타인이 끼치는 영향력이 너무 막강한 나머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상태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전반적 세태다. 사회의 거대한 ‘인풋’(input·입력)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전혀 찾지 못하는 거다. 미디어에서 단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현상과도 관련이 있다. 이에 대한 해독 방법으로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는 명상을 들 수 있다.”

―좀 더 설명한다면….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자신에 대해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겪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이를 통해 의식의 반경을 확대해 가고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삶 속으로 편입시키도록 하는 거다.”

‘리스본행…’이 나왔을 때 갑자기 떠나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작가는 “무엇보다 깨달음이 중요하다. 인간만이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는 욕구를 갖고 있다”고 밝힌 것을 떠올리는 대목이었다. 그에게 소설과 철학은 다르지 않은 표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에선 여성혐오에 대한 이슈도 뜨겁다.

“여성혐오는 어리석고 저급한 생각이다. 교양과 교육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존엄성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어떤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편견 없이 숙고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