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국내에 번역 출간되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1985년)는 여성들의 독백으로 이뤄진 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참전했던 여성 200명을 인터뷰한 기록이다. 승리와 공훈과 사령관 얘기를 하는 대신 이 책에서 여자들은 전투가 끝난 뒤 시신 사이를 걸어갈 때의 참담함, 전장에서 첫 생리혈이 터져 나왔을 때의 경험 등을 말한다. 저자는 우크라이나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뿐만 아니라 체르노빌 원전사고 관련 인터뷰 모음집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도 잘 알려진 알렉시예비치의 저서다.
현장의 생생한 증언을 담은 그의 저서는, 문학 장르가 아님에도 ‘목소리 소설’로 불린다(저자 자신은 이를 ‘소설-코러스’라고 명명했다). 그는 최근 2, 3년 새 급부상한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다. 노벨상의 분야별 발표가 이어지는 이달 들어 영국 베팅 업체 래드브룩스가 꼽는 유력 후보 1위다(6일 현재). 시인도 소설가도 아닌 신문기자 출신 저자에게 쏟아지는 비상한 관심은 노벨 문학상이 기성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전 지구적 경향에 동참하길 바라는 기대로도 읽힌다.
올해도 많은 문인이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된다.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 케냐의 응구기 와 시옹오, 미국의 필립 로스와 조이스 캐롤 오츠 등이 꼽힌다. 한국의 고은 시인도 오스트리아의 페터 한트케와 함께 공동 10위로 언급됐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 선정 기준은 시기에 따라 3단계로 구분되는데 ①이상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뛰어난 작품을 쓴 작가(1901∼1945년·노벨 유언 기준) ②사고와 언어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작품을 쓴 작가(1946∼1977년·안데르스 외스털링 스웨덴 한림원 의장) ③우수한 작품성을 갖고 있음에도 주목받지 못했던 작가 발굴(1978년∼현재·라쉬 귈렌스테 스웨덴 한림원 의장)이다. ‘문학상’이라는 타이틀(본인도 당황해했다는 1953년 수상자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있긴 하다)과 3단계의 공통분모인 ‘작품성’을 생각해 보면 ‘훌륭한 문학작품을 쓴 작가’가 대상인 것은 명확하다.
노벨 문학상 시즌에 맞춰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을 비롯해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들의 소설이 잇따라 국내에 출간된다. 한 가족을 통해 현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여주는 아모스 오즈의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노화와 죽음의 의미를 탐색하는 필립 로스의 ‘죽어가는 짐승’, 케냐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자본주의와 권력자들의 부패를 고발하는 응구기 와 시옹오의 ‘피의 꽃잎들’…. 모두 ‘뛰어난 문학’에 값하는 작품들이자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제5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 아모스 오즈와의 인터뷰에서)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는 소설들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