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포니
6·25전쟁 참전용사들과 함께 비무장지대를 갔었다. 이들은 한국의 한 교회로부터 초대를 받아 한국을 찾았다. 아내 아이들 손자손녀들과 함께 왔다. 몇 분은 이번 한국행이 전쟁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전쟁 중 사망한 전우들의 희생정신 그리고 전쟁에 참전한 자부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날 모든 참전용사가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1950년대 이후 한국이 얼마나 발전을 했는지 놀랍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판문점을 비롯해 비무장지대 인근의 여러 곳을 갔다. 다들 북한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나는 사실 여러 번 이곳을 방문했지만 갈 때마다 남한과 북한의 사상적, 경제적, 문화적 차이를 되새기곤 했다. 뉴스에서 하도 비무장지대가 위험하단 얘기를 들었던지라 처음 방문했을 땐 정말 긴장하기도 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비무장지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막상 와보니 조용하고 잔잔한 느낌이었다. 참전용사들과 방문한 날도 나는 여기저기를 거닐며 사진을 찍었고 함께 북한 사람들의 생활을 이야기했다.
‘통일’은 한국사회에서만 논할 수 있는 독특한 이슈다. 사람마다 통일에 대한 의견은 모두 다르다. 국적에 따라, 세대에 따라 다르며 심지어 가족 구성원 간에도 차이가 있다. 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고방식을 엿보는 게 매우 흥미롭다.
한국에 살다 보니 통일 이슈가 얼마나 복잡한지, 또 얼마나 다양한 의견이 있는지 알게 된다. 한 친구는 통일이 가능한 한 빨리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통일이 되면 가족과 함께 이민 갈 거라고 했다. 특히 내가 만난 젊은 세대들 대부분은 “북한 문제는, 그냥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분이 많았다. 그들은 북한의 체제변화가 천천히 이루어졌으면 좋겠고 만약 통일이 된다면 남한이 큰 경제적,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길 바랐다. 세부 견해들은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남북의 계속되는 대치상황에 좌절감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많은 학자가 남북관계를 끊임없이 토론해왔다. 이승만 정권부터 그 이후 정부까지 각각 다양한 통일정책을 추구해 왔다. 통일에 대한 의견은 단순하게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연구하고 생각해본 후에야 얻을 수 있다. 나는 석사과정에서 국제관계학과 동북아시아 정치를 공부하며 통일에 대해 많은 토론을 했다. 그리고 탈북자들의 증언, 정부 보고서 등 여러 자료들을 접하며 한반도 통일을 고민해봤다. 비무장지대에 가는 것 역시 북한을 느낄 수 있는, 작지만 중요한 기회였다.
한국 사회에서 통일이 얼마나 민감한 사안인지 잘 안다. 건강한 사회란 불이익이나 보복의 두려움 없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다. 통일에 대해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자유로운 사회라면 다양한 의견이 함께 논의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강해질 수 있다.
그날 우리는 비무장지대에서 서울로 돌아와 남산타워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남산타워에서 서울의 반짝이는 야경을 내다보며 전쟁 이후 지금까지 한국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생각했다. 참전용사의 후손들이 미래의 한국을 어떤 모습으로 느낄지도 매우 궁금했다. 우리는 미래를 볼 수는 없지만 한국은 잠재력이 정말 많은 나라이기에 낙관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벤 포니 씨(28)는 2009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한국에 왔으며 현재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동아시아 국제관계학을 공부하고있다. 6·25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을 이끌어낸 고 에드워드 포니 대령의 증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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