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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의 취재노트]‘전문경영인’ 반기문의 리더십 위기

입력 | 2015-10-09 03:00:00


부형권 특파원

매일 정오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30분 정도 진행되는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대변인의 일일브리핑은 반기문 사무총장의 주요 일정과 발언을 소개한 뒤 기자단 질문을 받는 순서로 열린다.

존 애시 전 유엔총회 의장이 130만 달러(약 15억1000만 원) 뇌물을 받은 대형 부패 스캔들이 터진 다음 날인 7일(현지 시간) 브리핑 시간은 유엔과 반 총장의 무기력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6일 미국 검찰이 이 사건을 발표할 때까지 반 총장은 정말 아무것도 들은 게 없었나.”

“유엔 감사실(OIOS)은 이런 대형 스캔들에 대한 어떤 단서조차 갖고 있지 못했나.”

“유엔총회 의장의 자격 요건 등을 강화하는 조치가 필요한 것 아닌가.”

뒤자리크 대변인은 불편한 표정으로 궁색한 답변을 이어갔다. 그는 “범죄인 수사를 위해 모든 걸 할 수 있는 (미국) 검찰과 내부 직원에 대한 감찰기구에 불과한 유엔 감사실을 비교하는 건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유엔총회 의장의 문제점’에 대해선 “193개 유엔 회원국들이 결정할 일”이란 태도로 일관했다.

사무총장은 유엔의 대주주 오너가 아니라 권한을 위임받은 전문경영인에 불과하다는 인식은 반 총장과 그 측근들이 꾸준히 밝혀온 생각이다. 반 총장 측은 “왜 더 강력한 유엔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느냐. 핵심 현안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 수많은 일정을 소화하지만 존재감 없는 사람(Nowhere Man)이다”라는 충고나 비판이 쏟아질 때마다 “사무총장은 오너가 아니지 않느냐”고 반박하곤 했다. 그러면서 “오전 5시부터 업무를 시작하고 스스로 재산을 공개하는 ‘성실하고 솔선수범하는 반기문형 리더십’이 소리 없이 유엔을 개혁시켜 왔다”고 했다.

그러나 ‘반기문형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미국 검찰은 “현재 (유엔 부패) 수사는 초기 단계”라고 말했다. 파문이 어디까지 튈지 예측조차 힘든 상태다. 유엔총회 의장 임기는 1년에 불과하지만 연임한 반 총장의 임기는 내년 말까지 10년이다. 누가 봐도 유엔을 구해낼 책임은 반 총장에게 있다.

유엔 안에선 사무총장 업무의 어려움을 빗대 사무총장 영어 단어(Secretary-General)의 약자인 SG의 원래 뜻은 ‘희생양(Scape Goat)’이라는 오랜 농담이 있다. 기꺼이 희생양이 되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으면 사무총장이란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명예롭게 마무리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