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통로/김황 글·안은진 그림/40쪽·1만1000원·논장
긴 추석 연휴 덕에 모처럼 여유로운 고향 나들이를 한 사람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주로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셨나요? 자동차와 기차를 위한 길을 만들기 시작한 이후 사람들의 이동 시간은 점점 단축되어 왔지요. 도로와 철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산을 깎아야 하고 숲을 잘라내야 합니다. 바위를 뚫고 강을 덮으며 바다를 메우기도 해요. 그런데 그 일을 하는 사람도, 그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처음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 있습니다. 그 길의 주인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지요.
우리나라에 도로가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100여 년 전, 생태 통로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95년, 불과 20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생태 통로는 산과 강, 바다의 원래 주인들, 동식물들을 위한 길입니다. 80여 년 동안 무엇을 얼마나 잃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몰라요. 다만 먹이사슬이 깨지고 생태계 어느 부분인가가 달라지고 바뀐 결과만 남았습니다.
이 책은 동물들에게 만들어준 새로운 길에 대한 이야기예요. 동물들은 무섭게 달려가는 바퀴와 차가운 시멘트 바닥이 자기들을 어떻게 죽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늘 다니던 길을 가려 했을 뿐이에요. 그러니 그들의 길을 따로 만들어 준 것이지요. 나무와 나무를 타고 날아다니며 살던 날다람쥐에겐 그만한 큰 나무를 당장 마련해 줄 수도 없어 안타깝습니다.
책을 덮으면 사람을 위한 길에서 수없이 죽어간 동물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순식간에 잘려 나간 수십 년 된 나무에게 사과하고 이제라도 작은 나무와 풀들이 무리지어 자라날 수 있게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들어요. 앞면지에 차를 타고 달리던 아이가 뒷면지에는 나무를 심게 되는 것처럼 독자 역시 그런 마음을 갖게 되기를, 지금 당장 나무를 심어주기를 기대합니다.
김혜진 어린이도서평론가